미술관과 박물관/매헌윤봉길의사기념관

(매헌윤봉길의사기념관) 중국으로 향하다

윤의사 2022. 3. 5. 16:07

봉길은 신의주에서 시조사 기자인 이흑룡과 만나기로 약속을 하였기에 서울행 기차를 탔다.  가족 누구에게도 집을 나가 독립운동을 하겠다는 것을 알리지 않은 채였다. 하지만 서울역에 도착한 봉길의 발길은 이미 신의주로 향하고 있었다. 곧바로 경의선에 몸을 실은 봉길은 피곤함이 몰려와 잠이 들었다. 봉길의 잠에도 아랑곳 하지 않고 신의주행 열차는 밤새 달렸다. 봉길이 눈을 뜨자 아직 신의주 도착 전이었다. 봉길은 고향 친구인 황종진에게 편지를 썼다. 황종진에게 집을 떠났다는 사실을 알리면 자연 집에도 알려질 것으로 생각한 것이다.

 

일일이 여삼추(一日 如三秋 :하루가 3년처럼 길게 느껴진다는 말로 몹시 애타게 기다리는 마음을 가르킨다)라는 말이 있듯이 어제는 정말 저에게 오랜 세월이 흐른 듯 합니다. 이 편지를 받은 형은 아마 크게 놀라겠지요. 저눈 가정과 사업과 동지를 버리고 더 거대한 ㅇㅇ사업을 위해 고향을 떠났습니다. 독립을 되찾고, 빼앗긴 경제도 회복하는 것이 우리의 할 일이 아니겠는지요? 그러므로 저는 넓고 넓은 만주벌판에서 우리의 사업을 하겠습니다.

 

고향에서 일본 경찰의 감시가 심하기에 더 이상 자신의 꿈을 이룰 수 없기에 중국에서 뜻을 이루기 위해 집을 떠난다는 사실을 친구인 황종진은 알아주리라 믿었다. 잠시 생각에 잠긴 봉길의 옆구리를 누군가 찔렀다. 차장과 함께 험한 인상을 가진 3명이 함께 봉길을 지켜보고 있었다. 아마도 일본 경찰인 듯 하였다.

"이봐, 어디가지 가오?"

"신의주까지 갑니다."

"무엇하러 가나?"

봉길에게 신의주는 중국으로 가기위한 중간 기착지일뿐이기에 갑작스러운 질문에 당황스러웠다.

"친척집에 갑니다."

"그럼, 친척은 어디에 사는가?"

봉길은 말문이 막혔다. 신의주에 대해 아는 것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러자 험한 인상의 사내가 봉길을 일으켜세웠다. 그리고 몸수색을 하였다. 방금 쓰던 편지가 나왔다. 험한 인상의 사내는 '넓고 넓은 만주벌판에서 우리의 사업을 하겠다'는 내용을 보고는 희미한 미소를 보였다.

"이 편지가 수상하니 내리거라."

험한 인상의 사내는 팔꿈치로 봉길을 제압하면서 강제로 선처역에서 하차시켜 선천경찰서로 갔다. 선천경찰서에서 봉길은 고문을 당하며 신문을 받았다. 그들은 특히 '넓고 넓은 만주벌판에서 우리의 사업을 하겠다'에 주목하며 신문하였다. 

"이 내용은 곧 독립운동을 하겠다는 것이 아니냐?"

"누가 시켰느냐?"

"누구와 언제 어디서 만나기로 했느냐?"

봉길은 이흑룡과 만나 만주에 갈 시간에 선천경찰서에 있는 자신에게 분한 생각이 들었다. 일본 경찰은 쉽게 봉길을 놓아주지 않았다. 매일 불러 따귀를 때리고 심한 욕설을 퍼부으며 똑같은 내용의 신문을 하였다. 때로는 가까운 사이인 것처럼 봉길에게 다가와 회유책을 쓰기도 하였다.

"나는 내 양심에 꺼리낄 행동을 한 적이 없소. 또한 누가 시킨다고 일을 할 무식한 놈도 아니오. 설사 누가 시켰다고 한들 내가 당신들에게 말하겠소. 그러니 시간 낭비하지 말고 어서 나를 재판에 넘기든 감옥에 보내든가 하시오."

당찬 봉길의 말에 일본 경찰은 더 이상 독립운동가의 정보를 얻을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비록 중국으로 가는 시간은 늦어졌지만 선천경찰서에서의 경험은 봉길을 더욱 정신적으로 단련을 시켰으며, 어더한 고난도 이겨낼 힘이 생기게 하였다.   봉길은 선천경찰서에 온 지 보름만에 혐의가 없다고 하여 풀려났다. 경찰서에서 나온 봉길은 아는 사람 없는 이곳에서 어떻게 해야하나를 고민하면서 여관을 잡았다. 그리고는 사촌동생 신득에게 편지를 썼다.

매헌윤봉길의사기념관의 중앙홀에 있는 좌상

 

매헌윤봉길의사기념관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