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고 배우는 문화유산/조선 왕릉

조선 왕릉, 원릉

윤의사 2021. 11. 16. 16:39

경기 구리시 동구릉로 197의 동구릉 내에 있는 원릉은 조선 21대 영조와 두 번째 왕비 정순왕후 김씨의 능이다.

쌍릉으로 정자각 앞에서 바라보았을 때 왼쪽(서쪽)이 영조, 오른쪽(동쪽)이 정순왕후의 능이다.

능침은 난간석으로 이루어졌으며, 왕과 왕비의 능 앞에 각각 혼유석 1좌씩 배치되었다.

세련되고 화려한 꽃무늬로 장식된 망주석은 오른쪽은 세호가 위를 향하고 있고, 왼쪽은 세호가

아래로 내려가는 모양이다.

사각옥개형의 장명등으로 상, 중, 하대석 부분이 꽃무늬로 되어 있다.

영조의 원릉 때부터 중계와 하계가 합쳐지면서 문인석과 무인석을 함께 배치했다. 

이곳은 효종의 구 영릉(寧陵)자리였다.

그러나 석물에 틈이 생기는 등 문제점으로 현종 14년(1673)에 천릉하고난 후 영조가 묻혔다.

원래 영조는 첫 번째 왕비인 정성왕후 서씨의 홍릉에 묻히고자 쌍릉으로 조성했으나,

정조가 이곳에 모셨으며, 계비인 정순왕후 김씨가 순조 5년(1805)에 세상을 떠나자 쌍릉으로 만들었다.

왼쪽이 영조, 오른쪽이 정순왕후 릉
중계와 하계의 구분없이 문,무인석을 함께 배치했다.
영조 신도비
정순왕후 신도비

능침 아래의 비각에는 총 3기의 표석이 건립되었다.

1비는 1776년 영조 승하 후에 세운 영종대왕 표석, 2비는 영조 추존 후 세운 영조대왕 표석,

3비는 순조 5년(1805)에 세운 정순왕후 표석이다.

원릉 예감
신계 문양
신도와 어도
금천교

영조는 숙종과 숙빈 최씨의 아들로 숙종 20년(1694)에 창덕궁 보경당에서 태어났다.

숙종 25년(1699)에 연잉군에 봉해지고, 경종이 즉위한 후에 왕세제에 책봉되었다.

왕세제 책봉을 주장하는 노론과 시기상조론을 들어 반대한 소론 간의 정쟁으로

영조 자신도 경종을 시해하려고 했다는 모함을 받기도 하였다.

영조는 정쟁과 우여곡절 끝에 1724년에 경종이 세상을 떠나자 왕위에 오르게 되었다.

영조는 즉위하면서 왕권을 강화하고, 탕평책을 펼쳐 균형 있는 인재를 등용하였다.

또한 민심을 안정시키려고 군역을 감소한 균역법을 시행하였다.

또 청계천을 준설하고, 사치를 금하였으며, 

 『속오례의』, 『국조상례보편』 등을 편찬하였다. 

원릉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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