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고 배우는 문화유산/조선 왕릉

조선 왕릉, 파주 장릉

윤의사 2021. 10. 23. 09:57

장릉은 세 곳이 있다. 어제 언급한 김포 장릉은 인조의 아버지(후에 추존된 원종)과 구씨부인(후에 인헌왕후로 추존)

합장된 릉이고, 파주에는 원종과 인헌왕후의 아들인 인조의 릉인 장릉이며 영월은 단종 릉이다. 

경기도 파주시 탄현면에 있는 파주 장릉은 제16대 인조(1595~1649)와 인열왕후(1594~1635) 한씨의 무덤으로

17세기와 18세기가 공존하는 양식의 왕릉이다.
인조는 임진왜란 중 선조의 아들인 정원군(추존왕 원종)의 아들로 황해도 해주부 관사에서 태어났다.

선조의 첫 손자였기에 왕궁으로 불러들여 기르며 아꼈고, 의인왕후 박씨도 아꼈다고 한다.
광해군의 중립외교를 비판하는 서인들이 인목왕후의 서궁 유폐와

임해군과 영창대군의 죽임에 대한 부도덕성을 비판하며 일으킨 반정에 의하여 임금이 되었다.

인조는 즉위한 후 서인들이 주장하는 친명배금정책으로

정묘호란과 병자호란으로 신하의 예를 갖춘 삼전도 굴욕을 겪게 되었다.

서울 송파에 있는 삼전도비

인조의 첫 번째 비인 인열왕후는 서평부원군 한준겸의 딸로 선조가 생전에 혼인하고자 했으나 선조의 죽음으로 미루어지고, 3년 상을 치른 후 혼인하려다가 인열왕후가 병이 있어 미루다 광해군 2(1610) 능양군(뒤의 인조)과 가례를 올렸다.
장릉은 본래 인조가 파주시 운천리에 인열왕후 능을 먼저 만들고 우측에 자신이 죽은 후 묻혔으나,

화재와 뱀 및 전갈이 나타나 영조 때 현 위치인 파주시 갈현리로 옮겨 다시 조성했다.

장릉 전경(출처:궁능유적본부)
능침 전경(출처:궁능유적본부)

천장으로 합장하면서 일부 석물은 기존의 것을,

규격이 맞지 않은 병풍석 등은 새로 만들어 장릉은

17세기와 18세기의 석물이 공존하는 왕릉이라고 볼 수 있다.
왕과 왕비가 합장된 무덤 형태로 구름무늬와 십이지 신상을 새기던 전통이 아닌

모란문과 연화문 등 꽃무늬를 새겨 새로운 양식을 남겼다.

혼유석(출처:궁능유적본부)
모란문과 연화문이 보인다(출처:궁능유적본부)
문,무 석인(출처:궁능유적본부)

 

이 전통은 이후 왕릉의 전통이 되었다.

대부분의 정자각 기둥 하부에는 구름과 하늘을 의미하는 하얀색과 파란색 줄이 있는데,

일반적으로 정자각 전면부의 원형 기둥에만 칠하는데 비해 파주 장릉에서는 정자각의 모든 기둥에 칠해져 있다.
정자각 우측에는 비각과 수복방이 있다. 다른 릉과 달리 비각이 정자각보다 릉침과 가까이 있다.

재실(출처:궁능유적본부)

파주 장릉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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