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고 배우는 문화유산/조선 왕릉

조선 왕릉, 헌릉

윤의사 2021. 11. 8. 17:19

서울특별시 서초구 내곡동에 있는 헌릉은 제3대 태종(1367~ 1422)과 원비 원경왕후(1365~1420) 민씨의 능이다.

태종 이방원은 고려 공민왕 16년(1367)에 함흥 귀주동에서 태조 이성계와 신의왕후 한씨의 5남으로 태어났다.

방원은 16세에 문과에 급제했다.

태종 즉위의 1등 공신인 하륜은 방원을 보고 다른 사람들에게

"이 사람은 하늘을 덮을 만한 영특한 기상이 있다"

라고 칭찬했다.

계모인 신덕왕후 강씨마저도 자신의 몸에서 태어나지 않은 것을 안타까워할 정도였다.

이성계가 조선을 건국할 때 정몽주를 선죽교에서 죽이고,

공양왕에게 양위를 받아 즉위하게 하였다.

의안대군(방석)이 세자가 되자, 태조 7년(1398)에 건국 공신인 정도전, 남은 등을 살해하고

방석과 방번은 귀양가는 중에 살해하였다. 이것이  '제1차 왕자의 난'으로

방원은 방과(후에 정종)에게 세자를 양보하였다.

정종 2년(1400)에 넷째 형인 방간이 박포와 공모해 '제2차 왕자의 난'을 일으켜 방원을 공격하자,

이를 진압하고 정종의 양위로 즉위하였다.

방원은 즉위하여 공신과 민씨 세력을 제거하여 왕권을 공고히 하였다.

그리하여 세종의 치세를 이루는 기초를 닦았다.

원경왕후 민씨는 고려 우왕 8년(1382)에 방원과 혼인하였다.

방원이 정권을 잡는데 일조한 원경왕후 민씨는 자신의 처가를 방원이 숙청함에 이혼을 생각할 정도였으나,

세종의 만류로 이루지 못했다.

원경왕후는 세종 2년(1420)에 세상을 떠나자 대모산에 안장되었고,

2년 후 사망한 태종을 세종이 어머니인 원경왕후 능 옆에 안장하였다.

쌍릉으로 이루어진 헌릉은 정면에서 볼 때 왼쪽이 태종의 능, 우측이 원경왕후의 능이다.

참도가 다른 릉과 달리 어도와 신도를 구분하지 않았으며,

신계와 어계도 3단이 아닌 2단이다.

병풍석에 십이지신상을 새겨 무덤을 하나의 우주로 보기도 했고,

12지신상이 무덤의 수호신이 되기도 하였다.

혼유석의 고석은 5개로, 건원릉 이외에 5개의 고석이 놓인 릉은 없다.

세종대왕의 효성스러운 마음으로 다른 릉에 비해 무덤이 크고 석물이 많다.

세종대왕은 사후 부모님 곁에 묻어 달라고 유언하였다.

그리하여 처음에 묘역을 헌릉 옆에 모셨으나,

수양대군의 계유정란으로 피를 불렀기에 18년 후 여주 영릉으로 옮겼다.

(사진출처:진성규교수님)

태종의 릉
원경왕후의 릉
구 신도비
신 신도비
신도비 귀부

 

헌릉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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