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고 배우는 문화유산/조선 왕릉

조선 왕릉, 김포 장릉

윤의사 2021. 10. 22. 14:59

요즈음 많은 사람들의 관심을 받고 있는 릉이 있다.

바로 김포 장릉이다.

인천시가 건설하고 있는 아파트가 바로 왕릉의 앞을 가리고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경우에는 유네스코가 지정한 세계문화유산에서 제외될 수도 있다고 하니 걱정이 아닐 수 없다.

그렇다고 애써서 마련한 아파트를 어떻게 할지 난감한 지경일 것이다.

이 왕릉은 경기도 김포시 풍무동에 있는 장릉으로

제16대 인조의 아버지 원종(1580~1619)과 어머니 인헌왕후(1578~1626) 구씨가 잠들어 있는 곳이다.

원종은 선조의 다섯째 아들 정원군으로 신중한 성격과 효성이 남달랐으며

임진왜란 때에는 선조를 가까이서 호종하였기에 1604년 호성공신 2등에 봉해졌다.

선조의 뒤를 이은 광해군은 정원군을 견제하였다.

특히 정원군이 살던 곳으로 집터에서 왕의 기운이 일어난다고 해서 광해군이 빼앗아 궁궐을 지었다.

왕의 기운이 있다고 하는 것은 인조반정으로 정원군의 아들인 능양군이 왕위에 오르니

풍수도참설이 맞기는 맞는 모양이다.

경희궁의 서암

정원군의 셋째 아들인 능창군이광해군 7년(1615)에 황해도 수안군수 신경희 등의 추대를 받아

왕이 되고자 한다는 상소가 들어와 능창군은 강화도로 유배를 갔다가 죽음을 당했다. 

나머지 아들에 대한 걱정으로 술로 달래던 정원군은 늘

"나는 해가 뜨면 간밤에 무사하게 지낸 것을 알겠고 날이 저물면 오늘이 다행히 지나간 것을 알겠다.

오직 바라는 것은 일찍 집의 창문 아래에서 죽어 지하의 선왕을 따라가는 것일 뿐이다."

 

말할 정도로 불안증에 시달리다 40세에 세상을 떠났다.

정원군은 처갓집 선산인 남양주시 금곡동에 묻혔다가,

인조반정으로 즉위한 인조가 원종의 묘호를 추존하면서 현재의 자리로 옮겨져 장릉이 되었다.

육경원에서 왕릉으로 바뀌었지만 병풍석과 난간석이 없는 쌍릉이다.

육경원을 의미하는 비석의 받침돌을 2008년에 발견해 비각 옆에 전시했다.

육경원 받침돌(출처:궁릉유적본부)

홍살문에서 참도가 시작되는데, 넓으면서 계단으로 이루어져 있다.

참도에 계단이 있는 극소수의 예이며, 자연의 지형에 맞게 지은 정자각 때문이다.

5계단으로 이루어진 참도(출처:궁릉유적본부)
릉침 전경(출처:궁릉유적본부)
문, 무인석(출처:궁릉유적본부)

하루속히 해결되어 살아서도 불안했던 원종의 마음을 편하게 해주었으면 한다.

 

김포 장릉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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