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남 이야기/성남의 인물

성남의 충신, 남이흥 장군

윤의사 2021. 10. 29. 20:27

인조5년(1627)에 남이흥 장군은 3도 부원수겸 평안도 병마절도사로 재임하였다.

이때 정묘호란이 일어나 후금(청국)의 3만6천 대군이 침공하였다.

남이흥 장군은 안주성에서 3천여명의 군사로 맞섰지만, 숫적인 열세를 극복하지 못하고

만주족을 화약고로 끌어들여 화약을 점화하여 많은 적과 함께 죽음을 당했다.

아버지인 남유 장군은 노량해전이 있은 뒤 3일 후 왜군에 의해 희생되었고,

남이흥 장군이 평안도에서 죽음을 당하자 모친은 

“30년 사이에 부자가 모두 나라를 위하여 죽었도다.

두 사람의 죽음은 영광된 것이라 무슨 한이 있으랴 마는

전몰 군사와 그 미망인과 자식들이 잿더미속에서 울게 됨이 한스럽다.”

고 했다.

인조는 남이흥 장군의 전사에 신하의 죽음을 슬퍼하여

장례 때에는 눈물을 흘리며 입고계신 곤룡포를 벗어 장군의 관(棺)에 덮어 주며서 애도하였으며

대광보국숭록대부의정부좌의정을 증직하고,

의춘부원군에 봉하였으며 충장의 시호와

아울러 특별한 충신에게만 내리는 “불천지위”(不遷之位)를 내리어 대대손손 제사를 지내도록 명하였다.

원래 묘역은 성남시에 있었으나,

청계천의 마장동과 용두동 주민이 이전하면서 1971년 7월 당진으로 이장하였다.

당진에서는 남이흥 장군에 대한 대대적인 추모사업과 성역화를 하여

지역 축제로 확대하였다.

성남에서 이런 행사를 하지 못하는 것이 안타까울 뿐이다.(사진출처:남이흥장군 홈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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