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남 이야기/성남의 인물

강정일당

윤의사 2020. 9. 2. 15:55

강정일당(姜靜一堂)은 정조-순조 년간 활동했던 여성이자 성리학자이다. 충청도 제천 근우면 신촌에서 영조 48(1772)에 외가에서 출생하였다. 본관은 진주이고, 세조 때 공신인 강희맹의 13대손이다.

조부인 강심환과 부친인 강재수가 일찟 세상을 떠난 집안이 어려웠다. 어머니는 성리학자 권상하의 동생인 권상명의 현손이다.

어머니 권씨의 태몽에 돌아가신 친정어머니가 옆에 함께 온 사람을 가리키며 여기에 덕을 갖춘 사람이 있으니 이제 너에게 부탁한다.”는 말을 하고 사라지는 꿈이었다. 그래서 이름을 태몽에 따라 지덕(至德)’이라 지었다 .

정일당은 179120세에 윤광연과 혼인했지만, 윤씨 집안도 어려워 3년 후에나 들어갈 수 있었다. 시아버지는 정일당을 보고 매우 만족해하며

우리 가문이 부흥하겠구나.”

하였다 한다.

3년 만에 들어온 시댁은 경제적으로 어려워 윤광연은 생계를 위해 공부를 하지 못했다.

두 사람은 경기도 과천에서 남이 버리고 간 외딴 집을 빌려 살면서 양식이 떨어질 때도 있었고, 윤광연은 서당에서 아이들을 지도하고, 정일당은 삯바느질로 생계를 이어갔다 .

정일당은 어머니로서 54녀를 낳았으나 모두 1년이 되기 전에 죽으니 불행한 삶이었다.

정일당의 노력으로 말년에는 서울 남대문 밖 약현에 마당이 있는 집을 마련할 수 있었다. 그리고 경기도 광주부 대왕면(현재의 판교 청계산)에 산을 사서 종중묘를 조성하였다.

정일당은 본인이 생계를 책임지고 남편에게 과거 시험 준비를 하면서 성리학을 가까이 하게 되었다.

배우지 않으면 사람의 도리를 할 수 없습니다. 정도를 버리고 생계를 도모하는 것은 학문을 하면서 빈한하게 사는 것만 못합니다. 제가 비록 재주가 없지만, 바느질과 베 짜는 것을

조금 알고 있으니, 당신은 성현의 책을 공부하시고 집안일에는 마음 쓰지 마세요.”

남편 윤광연의 글 읽는 소리를 들으면서 간혹 글자의 음과 뜻을 묻곤 했는데, 한번 보고는 암송했고 깊은 뜻을 알아차렸다. 그녀의 재능은 남편을 능가하여 남편과 학문적 토론을 함께할 정도에 이르렀다 .

윤광연은 부지런히 공부하였으나 벼슬길에 나가지는 못했고, 정일당의 충고에 따라 과거시험을 단념하고 학생들을 가르치고 부인과 학문을 토론하며 지냈다. 남편인 윤광연에게 있어 정일당은 스승과 같은 존재였다.

부인도 내가 한가지라도 잘하는 것이 있으면 기뻐하였고, 한 가지라도 허물이 있으면 걱정하여 충고 하였다. 내가 우둔하여 모두 실천하지 못했지만, 부인의 좋은 말과 바른 충고는 죽을 때까지 가슴에 새겼다.” (윤광연 -부인 강씨 기리며 )

정일당은 허약한 몸으로 가난을 벗어나기 위해 과로를 한 결과 만년에 지병으로 1832914일에 61세로 세상을 떠났다.

세상을 떠나기 하루 전에 남편이 그녀 앞에서 눈물을 흘리자

죽고 사는 것은 천명에 달린 것이니, 어찌 슬퍼하십니까?”

하며 위로하였다고 한다.

광주 청계산 동쪽 대왕면 둔퇴리 선영(오늘날 판교) 잠들어 있다.

그녀는 가난한 가정환경에서도 학문에 대한 노력으로 10여 권에 이르는 저서를 남겼고, 현재 정일당유고(靜一堂遺稿)로 남아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