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고 배우는 인물사/여성독립운동가

여성독립운동가 박자혜선생

윤의사 2021. 9. 25. 20:18

박자혜선생은 1895년 12월 11일 중인 출신인 아버지 박원순의 딸로

경기도 고양군(오늘날 강북구 수유동)에서 태어났다.

아기나인으로 10여 년동안 궁녀로 있다가 

1910년 경술국치 이후 궁녀에서 벗어나 숙명여학교 기예과에 입학하여 근대 교육을 받고,

사립조산부양성소를 졸업 후 조선총독부의원 산부인과의 간호부에서 일했다.

1919년 3.1만세운동이 일어나 부상 동포들을 치료하면서 울분을 가지게 되었으며

이후 간호사들을 모아 간우회를 조직하였고

독립선언서를 제작하여 만세시위와 함께 간호사들의 동맹파업을 주도하였다.

이 일로 일경에 체포되었다가, 병원장의 신병 인도로 풀려난 후 북경으로 갔다.

회문대학 의학과(후에 연경대 의예과)에 입학하여 1년을 수학한 후 신채호선생을 만나 혼인하였다.

장자 신수범과 둘째를 임신한 후 경제적 어려움으로 귀국하였다.

신채호선생이 김원봉의 의열단에 참여하자, 남편과 연락하면서 독립운동을 지원하였다.

나석주열사가 동양척식주식회사를 폭파하기 위해 국내로 들어왔을 때에는 각종 편의를 제공하였다.

신채호선생이 투옥되자 일경의 유혹을 뿌리치고 남편의 옥바라지와

자녀 교육, 생계를 이끌면서 독립투사들의 지원 업무를 담당하였다.

1936년 뤼순감옥에 투옥된 신채호선생이 순국하고, 둘째 아들마저 14세의 나이로 잃은 후 

조국의 광복을 보지 못한 채 1943년 병으로 세상을 떠났다. 

1990년 정부에서는 공훈을 기려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