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역사문화사전/김종수의 역사이야기

영화 '자산어보'에서 역사적 사실과 다른 부분은?

윤의사 2021. 4. 8. 20:17

문화재청에 근무하는 친구가 올린 글을 옮겼다.

호를 이름으로 바꾸었다.

 

영화 '자산어보'가 상영되고 있다.

영화에서 역사적 사실과 다른 부분이 두 곳 있다.

하나는 정약용이 1818년에 유배가 풀렸는데, 영화에서는 정약전보다 정약용이 먼저 해배가 된 것으로 나온다.

정약전이 1816년에 세상을 떠났으므로, 그는 아우인 정약용이 해배되는 것을 보지 못하고 죽은 것이다. 
왜 역사적 사실과 다르게 약전이 정약용이 해배된 것으로 영화에서 나올까?

아마 감독은 약전의 절망과 죽음을 연결시키려고 트릭을 쓴 것은 아닐까?

 

또 하나, 역사적 사실과 다른 것이 있다.

약전은 우이도(소흑산도)에서 6-7년 있다가 1807년경 대흑산도로 옮겼는데,

영화에서는 그 반대로 나온다.

즉 대흑산도에서 우이도로 거소를 옮긴 것으로 나온다.


여하튼 대흑산도로 거소를 옮긴 후 사리마을에 서당인 복성대(사촌서실)을 짓고 아이들을 가르쳤다.

아이들만 가르친 것이 아니라 창대의 도움을 받아 흑산도에서 잡히는 226종에 달하는

어패류와 어초류의 이름과 모양, 습성에 관한 <자산어보(玆山漁譜)>를 지었다.

<자산어보>라는 책 이름은 정약전이 흑산도를 말하는 검을 '흑(黑)'자가 어둡고 음침한 기운이 있음을 꺼려

같은 의미를 가진 '자산(玆山)'이라고 부른데서 유래한다.
<자산어보> 서문에 그리 적혀있다.

정약전은 흑산도에서 유배가 풀리지 못한 채 유배 15년 만인 1816년 59세로 세상을 떠났다.

정약전이 지은 책으로 <표해시말>이라는 책도 있다.

이 책은 흑산도(우이도) 홍어장수 문순득이 풍랑을 만나 표류하여 오키나와에서 8개월,

필리핀에서 3개월을 살다 중국 상선을 타고 중국 베이징을 거쳐 한양으로,

다시 흑산도로 돌아온 조선 500년 사상 특이한 표류를 했던 문순득을 만나 그의 구술을 글자로 기록한 책이다.

문순득은 눈치 빠르고 재치있고 긍정적 사고를 가진 인물로 어학에도 소질이 있어

오키나와(유구국) 언어, 필리핀(여송연) 언어, 중국어까지 단숨에 독파하여 통역까기 한 기이한 이력을 가진 인물이다.

정약전이 성리학적 사고를 깨지 않았다면 결코 백성의 생활과 관련된,

또 백성의 생활을 윤택하게 할 수 있는 물고기에 관한 연구와 책을 쓰지 못했을 것이다.

그의 생각은 지금 우리의 생각과 크게 다르지 않다.

그는 서학을 통해 평등을 받아들였고, 흑산도 섬 유배 생활을 겪으며 백성의 삶 속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어민과 관련있는 물고기에 대해 과학적 관찰을 하고 기록을 한 <자산어보>를 집필하였으며, 이를 유산으로 후세에 전했다. 

<자산어보>표지
창대묘와 창대 비

흑산도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