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역사문화사전/김종수의 역사이야기

장출입상 최윤덕 장군

윤의사 2018. 12. 23. 08:25

將出入相. 장수출신으로서 재상의 지위에 오른 경우를 말한다.
조선에서 정변 등으로 박정희나 전두환처럼 스스로 정권을
잡은 정치군인을 제외하고 순전히 공을 세워 재상이 된 경우는
최윤덕과 김종서인데, 김종서는 문신으로 무장을 겸한 것이니
무과출신 군인으로 재상이 된 경우는 최윤덕이 유일하다.

최윤덕. 우리는 김종서는 알아도 최윤덕은 잘 모른다.
현재 우리나라 북쪽 국경은 두만강과 압록강을 경계로 중국과
접경을 이룬다. 그럼 그 국경을 개척한 인물이 누굴까?
두만강은 김종서이고 압록강은최윤덕이다. 우리가 역사 교과서
에서 배운 사군 육진. 즉 四郡의 개척자가 최윤덕장군이다.

사대부의 나라 문신의 나라 조선에서 무과 출신인 군인이 최고
올라갈 수 있는 자리는 도절제사, 도순찰사 등이 고작이다.
오늘날로 말하면 군사령관이다. 그 외 병권을 가진 참모총장
격인 도체찰사나 국방부장관 격인 병조판서는 당연히 문과출신
문신들 몫이다.

그런데 이러한 원칙을 깬 인물이 최윤덕이다. 그는 무인의 최고
직책을 역임한 후 공조판서(국토부 장관)와 병조판서(국방부장
관)에 올랐고, 문신도 오르기 어렵다던 임금 아래단계인 정승이
되었다. 지금의 국무총리 격인 우의정과 좌의정이 되었다.

그런데 실록에 이상한 기사가 눈에 뛴다.
임금이 우의정과 좌의정에 임명하고자 하자 최윤덕이 전문을
올려 사양을 한 것이다. 남들은 하고 싶어서 안달인 최고 관직을
그는 한사코 사양하였다.

이유는, 무장(군인)이 의정(총리)을 맡는 것은 적당하지 않다는
것이다. 이를 요즘말로 해석하면 군인은 국방 안보에 관한 일을
해야지 정치를 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는 군인의 정치 불개입을
천명한 것이다.

실록의 사관은 최윤덕을 이렇게 평했다.
"최윤덕은 성품이 순진하고 솔직하며 간소하고 평이하며 용략이
많아서 일시에 명장이 되었다. 그 아우 최윤복, 최윤온, 최윤례는
아버지가 일찍 죽어 혼인을 하지 못했는데 최윤덕이 동생들을
자기 집에 모아 길러서 모두 혼수를 마련하여 혼인을 시켰으며
토지와 노비도 밀어주었다."

최윤덕이 70세에 집에서 별세하니 임금이 슬퍼하여 조회를 3일
동안 폐하고 예관을 명하여 조상하고 치제하였으며 미두 70석과
종이 100권을 부의하고 관에서 장사를 주관토록 하였다.
시호는 貞烈이다.

장수는 전쟁터에서 싸우다 죽어야 장수다운 죽음인데 70살
까지 장수하며 정승까지 역임한 최윤덕은 신라 김유신 이래
가장 행복했던 장수였다. 그를 알아보고 그의 성품과 능력을
인정하고 등용했던 당시 임금은 누구였을까?

최윤덕을 등용해 재상의 지위로까지 발탁한 임금은 바로
세종이었다.

최윤덕 장군 초상화



세종이 최윤덕을 칭송한 어록



최근 창원시는 시의 심볼로 최윤덕을 선정 동상을 세웠다.



최윤덕의 산소. 정승 산소치곤 소박하다.

그의 생가터는 정확하지 않다. 생가지 석축이다.
지난 2012년 생가지 발굴허가가 신청되어 나는 현장에 조사
나갔는데 밭으로 변해서 생가지가 맞나 의아했다. 증거도 나오
지 않았다. 장출입상의 최윤덕 장군 생가터가 이런 것에 놀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