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역사문화사전/김종수의 역사이야기

부여 釣龍臺에서

윤의사 2019. 8. 24. 15:20

부여 백마강가에 사람 하나가 겨우 앉을 만한 크기의 바위 하나가 있는데

여기에는 다음과 같은 전설이 전해 오고 있다.

중국 당나라 장수 소정방(蘇定方)이 백제의 도성을 함락시킨 뒤,

어느날 대왕포(大王浦) 하류에 갑자기 태풍이 불어 규암진을 지나

낙화암(落花巖)까지 잇대어 있던 수백 척의 당나라 병선이 순식간에 뒤엎어지고 말았다.

소정방은 이 돌연한 괴변이 왜 일어났는지를 일관(日官)에게 물었다.

일관이 말하기를, 이것은 백제를 지켜온 강룡(江龍)이 화를 낸 것이라고 하였다.

강룡을 퇴치할 방법을 소정방이 다시 물으니

일관은 용이 좋아하는 백마를 미끼로 하여 낚는 것이 좋다고 대답하였다.

그래서 소정방은 쇠를 두들겨 낚시를 만들고 굵은 철사를 낚싯줄로 하여

백마를 미끼로 강 가운데 바위 위에 앉아 용을 낚기로 하였다.

그러자 용은 미끼인 백마를 삼켜서 잡히게 되었다고 한다.

이 일로 하여 뒷날 사람들이 소정방이 용을 낚았다고 하는 이 바위를 조룡대라 하고,

백마를 미끼로 용을 낚은 강이 라 하여 금강(錦江)의 줄기인 부여 부근 일대의 강을

백마강이라 하였다고 한다.

이러한 전설은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 부여현(扶餘縣) 고적조(古蹟條)에 나온다.
그런데 ‘물고기’를 한자로 적을 때 ‘어룡(魚龍)’이라고 하는 것으로 보아,

소정방이 어룡을 낚은 것을 뒷날 잘못 전하여 용을 낚았다고 하게된 것이 아닌가 한다.

삼국유사(三國遺事)6 남부여 백제조에도 이에 대한 기록이 있다.

즉, 사비하(泗沘河)가에 한 바위가 있는데,

일찍이 소정방이 어룡을 낚기 위해 꿇어앉았던 자국이 바위 위에 있으므로 용암(龍巖)이라 한다는 것이었다. 이로 미루어 어느 시기부터, 어떤 연유에서였는지 모두 확실하지는 않으나 어룡이 용으로 바뀌어 전해져 오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위의 글처럼 백마강과 조룡대 이야기는 조선 중종 때
편찬된 <신증동국여지승람> 에 처음 보인다.

소정방이 백마로 용을 낚았다고 하여 그 바위를 조룡대라 하고
그 강을 백마강이라 했다는 것이다.

이로써 보면 조룡대라는 명칭이 썩 좋은 것이 아니다.
적국의 장수가 우리나라를 점령하는 과정에서 붙혀진
이름이기 때문이다.





일제 강점기 때의 조어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