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고 배우는 문화유산/조선 왕릉

조선 왕릉 융릉

윤의사 2020. 4. 25. 10:45

융릉은 사도세자(장조로 추존)와 헌경의황후 홍씨(혜경궁 홍씨)의 합장릉이다.

영조 38(1762)에 장조(사도세자)가 아버지 영조에 의해 뒤주에서 세상을 떠나자,

현 서울 동대문구 배봉산 아래에 묘를 만들고, 묘의 이름은 수은묘(垂恩墓)라 하였다.

정조가 1776년에 왕위에 오르면서 장헌세자라는 존호를 올리고 묘를 원으로 격상하여

이름을 영우원(永祐園)이라 하였다.

정조 13(1789)에 원을 현재의 화산으로 옮기면서 현륭원(顯隆園)이라 하였다.

순조 15(1815)에 헌경의황후 홍씨가 세상을 떠나자,

이듬해인 1816년에 현륭원에 합장으로 원을 조성하였다.

광무 3(1899)에 장조황제로 추존되자 능으로 격상되어 융릉이라 하였다.

다른 릉과 달리 비각 안에는 두 개의 표석이 있는데,

하나는 조선시대에 세운 조선국 사도장헌세자현륭원이라 한 것으로 보아 정조 때 만든 것으로,

다른 하나는 장조황제로 추존되면서 대한 장조의황제 융릉 헌경의황후 부좌라 씌여 있다.
능침은 인조 장릉의 면석을 따른 병풍석으로 둘렀다.

문인석은 금관조복을 입고 있어 다른 왕릉에서 복두를 쓴 것과 차별된다.
또한 왕릉에서 정자각과 능침이 일직선으로 이루어져 정자각의 뒷문을 통해 능침이 보이나,

융릉은 일직선이 아니다.

홍살문의 오른쪽에는 정조 14(1790)에 만들어진 원형의 연못인 곤신지(坤申池)가 있는데,

융릉에서 처음 보이는 남서방향에 물이 있어 좋은 곳이라 만든 풍수적 논리에 따른 것이라 한다.

 

 

 

 

 

 

정자각과 약간 오른쪽으로 보이는 능침

 

묘비각

 

장헌세자 묘비

 

장조황제묘비

 

 

곤신지

 

수원과 의왕 경계에 있는 지지대비, 순조 7년 화성어사 신호의 건의로 만들어졌다.

현륭원을 참배한 정조가 이 고개를 넘으면 화산이 보이지 않아 더디게 갔다고 하여

'지지대고개'라고 불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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