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고 배우는 문화유산/우리나라의 볼거리

조팝나무

윤의사 2020. 4. 11. 16:53

꽃이 만발한 모양이 '좁쌀을 튀기니 벌어진 모양이 좁살 같이 보인다.' 하여

"조팝나무",

또 멀리서 보면 '쌀(이밥)을 넉넉하게 담은 고봉밥 같아

굶주림도 달래고 꽃이 피기 전에는 좁쌀만 한 꽃봉오리가
알알이 맺어 조밥 같다.'고  "조밥 나무"라 불렀다.

한자로 "조선수선국"이며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조팝나무 라는 뜻이라 한다
조팝나무는 여러 이름으로 불리니 
"수선국", "공유심", "마뇨수", "목상산"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어린순은 나물로 먹으며,
한방에서는 뿌리는 해열 수렴 등의 효능과 
감기로 인한 열, 신경통 등에 사용되었다.

농부들에게 조팝나무의 변화는 농사의 시기를 알려주는 신호였다.

추운 겨울이 지나고 조팝나무 가지에 새잎이 돋는 것을 보고

농부들은 농사철임을 알고 논에 못자리를 하였으며
하얗게 꽃이 피었다 질 무렵에는 모내기를
여름이 지나고 조팝나무 잎이 누런 갈색으로 말라갈 무렵에는
벼를 베기  시작했다고 한다.

중국에선 조팝나무에 얽힌 전설이 있다.


어느 마을에 수선이라는  효성이 지극한 처녀가

아버지를 모시고 살았는데,

아버지가 전쟁터에 나갔다가

적군의 포로가 되어 감옥에 갇히게 되었다.

기다리던 수선은 이를 알고  아버지를 구하기 위해

남장을 하고 몰래 적군에 들어가 감옥을 지키는 옥리가 되었다.

그러나 아버지가 감옥에서 죽은 것을 알고

통곡하는 중에 적군임이 발각되었으나

수선의 갸륵한 효성에 감복하여 고향으로  돌아올 수 있었다.

이때 아버지 무덤가에 작은 나무 한 그루를

심었는데 이나무가 하얀 꽃을 피워

수선국이라고 부르게 되었다고한다.

반면 우리나라에도 조팝나무에 관한 전설이 있다.


옛날 아주 가난한 시절에 두 남매가 있었다.
두 남매는 너무 가난해 배우지도 못 하고
먹을 것이 없어 굶어 죽었다고 한다
모두가 가난했던 시절이라서
동네 사람들이 불쌍한 남매를 뒷산 양지바른 곳에
묘를 만들어주었는데
시간이 지나서 어린 남매의 묘 옆에
작은 나무가 자라더니 얼마 지나지 않아
흰색의 예쁜 꽃이 피기 시작했는데
멀리서 보면 마치 나무 위에 밥그릇에 고봉으로 담긴
하얀 쌀밥(이밥)같이 보였는데
이밥(쌀밥)을 실컷 먹는 것이 소원이던
남매의 한이 서려 그렇게 피었다고 한다.


정말 오늘을 사는 우리들은 부족함이 없는 시기이다.

50년 전 한국의 지금은 보릿고개였다.

이때는 북한보다도 경제력이 떨어질 때였다.

물로 배 채우고

얼마나 배가 고팟으면 조팝나무라는 꽃까지 만들었을까?

보릿고개를 물리치고 세계 11대 경제대국으로 들어선 대한민국을 만든

어른들의 노고를 잊지말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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