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고 배우는 인물사/인물여지도

지석영

윤의사 2020. 3. 21. 17:08

우리나라에서 처음으로 종두법을 실시해 무서운 전염병으로 알려져 온 천연두를 없앴다.

더 나아가 읽기 쉬운 의학책을 펴내고 의학 교육에 힘써 국민의 건강을 지키는 데 크게 이바지 하였다.

그는 나라의 개화를 앞당기기 위해 쉬운 한글을 쓰자며, 스스로 우리 말과 글의 연구에 앞장서기도 하였다. 자는 공윤, 호는 송촌이다.

지석영은 일찍부터 서양 학문에 눈을 떴고, 의학 교육을 받은 적은 없지만 중국에서 번역한 서양 의학책을 열심히 찾아 읽었다. 특히 영국인 제너의 종두법에 관심을 두었는데, 이것은 소에서 뽑아낸 면역 물질인 우두를 사람에게 접종해 천연두에 걸리지 않도록 미리 막는 방법이었다.

그때까지도 우리나라에서는 천연두 때문에 많은 어린이들이 목숨을 잃거나 흉한 곰보가 되고 있던 터라,

지석영은 종두법을 터득하기로 결심하였다.

지석영은 일본에 수신사로 다녀온 스승 박영선을 통해 일본인 의사 구가가 쓴 <종두귀감>을 받아 공부하였다. 이어 부산에 내려가 일본 해군이 세운 제생 의원에서 직접 종두법을 세운 뒤,

2살박이 처남에게 우두를 놓아 우리나라 최초로 종두를 실시하였다.

1880년에는 수신사 김홍집의 수행원으로 일본에 건너가,

우두의 원료가 되는 액체인 두묘를 만드는 법과 송아지로부터 접종액을 채취하여 보관하는 법을 배웠다.

지석영은 서울로 돌아와 종두를 실시하는 데 힘쓰는 한편 일본 군의관으로부터 서양 의학을 배웠다.

나아가 전주와 공주에도 우두국을 세워 종두를 실시하고,

각군에서 뽑혀 올라온 사람들에게 그 방법을 가르쳤다.

그리고 그동안 쌓아올린 종두에 대한 경험과 지식을 바탕으로 <우두신설>을 펴내 더욱 널리 퍼뜨렸다.

지석영은 조정에 바른 말을 하다가 전라도 강진으로 귀양을 가기도 했는데,

이때 한글을 아는 누구라도 쉽게 볼 수 있는 <신학신설>을 지어 질병을 예방하게 하였다.

지석영은 갑오개혁 이후 위생국을 통해 종두법을 널리 실시하게 되면서,

천연두를 없애는 일을 더욱 앞당길 수 있었다.

한편 그의 제안으로 1899년에 경성의학교가 세워지자, 첫 교장이 되어 10여 년간 의학 교육에 힘썼다.

지석영은 어려운 한자 때문에 개화가 늦어진다고 보고 쉬운 한글을 쓰자고 주장하였다.

그리하여 1905년에 한글 발전을 위한 글을 나라에 올려 국문 연구소를 세우게 하는 한편,

주시경과 더불어 한글 가로쓰기를 주장하였다.

이어 국문 연구소의 연구위원이 된 그는 우리 말과 글의 연구에 힘써 최초의 한글 옥편인

<자전석요>를 내기도 하였다.

그러나 나라를 일본에 빼앗기자 관복을 벗어 버리고 백성들의 건강을 돌보는 일에만 힘을 기울였다.


Tip) 천연두

천연두는 전 세계적으로 가장 무서운 전염병 가운데 하나였고, 우리나라에서는 마마라고도 불렸다.

이 병에 걸린 사람들은 대부분 죽거나 살아나더라도 부기싫은 곰보가 되었는데,

환자 한 명이 생기면 마을 전체가 초상집이 될 만큼 전염성이 매우 강했다.

처음에는 이러한 천연두를 예방하기 위해 천연두 환자의 고름을 뽑아 접종하는 인두법을 썼으나,

오히려 병을 퍼뜨릴 수 있어서 위험했다.

그러다가 19세기 이후 영국 의사 제너가 소의 고름을 이용하는 안전한 종두법을 개발하였다.

종두법이 널리 보급되면서 천연두 환자가 더 이상 나타나지 않자,

1980년에 세계보건기구는 천연두가 완전히 사라졌다고 발표하였다.



<우두신설> 표지, 왕실도서관 장서각에서

우두예방접종을 받고있는 장면

망우리에 있는 지석영선생 묘


묘지 입구에 있는 어록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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