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고 배우는 인물사/인물여지도

독서광 김득신

윤의사 2020. 1. 25. 17:02

김득신하면 누구나 생각하는 사람은 조선 후기의 화가인 김득신이다.

도화서의 화가로 김응환과 김홍도의 영향을 받은 김득신은

김홍도의 풍속화에 더하여 산수를 배경으로 그려 넣고 있다.

해학넘치는 풍속화는 김홍도와 비교할 정도로 이름을 떨쳤다.

 

도화서 화가 김득신에 비하면 독서광 김득신은 널리 알려져 있지 않다.

그의 묘소가 있는 증평에는 김득신문학관이 있다.

그의 묘소는 증평읍 율리 마을회관 뒷산에 위치하고 있다.

이곳에는 그의 아버지이자 후견인이었던 김치의 묘소도 있다.

모든 명당자리에 전하는 전설의 공통점이 있다.

상여를 운구하는 과정에서 갑자기 바람이 불면서 만장이 날아가

현재의 자리에 떨어지고, 상여는 움직이지 않아

이곳이 명당이라 생각하고 묘자리를 정했다는 것이다.

 

김득신은 대기만성이자 노력형 인물이다.

백이전(伯夷傳)1억 번이나 읽었다(실제 12만 번)고 하여

자기의 서재를 억만재(億萬齋)’라 이름 하였다.

문집인 백곡집에는 글들이 전하고 있으나,

병자호란으로 많이 분실했다고 전한다.

백곡집에는 반 이상을 오언·칠언절구와 같은 시가 차지하고 있다.

용호(龍湖)·구정(龜亭)·전가(田家)등은 어촌이나 산촌과

농가의 모습을 그림같이 표현하고 있다.

 

용호(龍湖)

고목한운리(古木寒雲裏) / 고목은 찬 구름 속에 잠기고

추산백우변(秋山白雨邊) / 가을 산엔 소낙비 들이치네.

모강풍랑기(暮江風浪起) / 날 저문 강에 풍랑이 일자

어자급회선(漁子急回船) / 어부는 급히 뱃머리를 돌리네.

 

아버지 김치가 태몽으로 노자를 만났기에 아명을 몽담(夢聃)’으로 지었다

그러나 3세에 천연두를 앓고 지적 발달이 늦어 10살에 글을 처음 배웠으며,

26자에 불과한 십구사락의 첫 단락을 사흘을 배우고도

구두조차 떼지 못할 정도였다

그러나 그는 쉽게 좌절하거나 포기하지 않고 노력을 하였다

그의 노력은 간서치라고 할 정도로 책벌레

오늘날로 하면 독서광이었다

독서광 김득신은 40여년간 읽고 쓰기를 반복하여

말년에 당대 최고의 시인’(택당 이식)으로 불렸으며, 효종도 칭찬을 하였다.

정약용도 김득신을 최고의 독서인으로 평하고 있다.

그는 스스로 지은 묘지명에서

재주가 남만 못하다고 스스로 한계를 짓지 말라.

나보다 미련하고 둔한 사람도 없겠지마는

결국에는 이룸이 있었다.

모든 것은 힘쓰는 데 달려 있을 따름이다.” 라고 썼다.

시간에 쫓기며 생활하고,

결과를 빨리 보려는 현대인들이 돌아봐야 할 인물이라 생각한다.


증평군에서 만든 김득신 캐릭터(출처:증평군청)


증평군 군립도서관에 있는 김득신 문학관


증평군 율리에 있는 김득신과 김치의 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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