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고 배우는 인물사/인물여지도

서울 인현동

윤의사 2020. 1. 4. 16:29

이순신장군과 인현동?
조금 낯선 느낌이 드는 것은 무엇 때문일까?
우리는 이순신장군하면 충청남도 아산에 있는 현충사를 생각하는데.

그러나 아산 현충사는 이순신장군이 태어난 곳이 아닌 외갓집이었다.

어머니인 초계 변씨의 본가였던 것이다.

조선 전기만 하더라도 혼인한 남자가 처갓집에서 사는 경우는 많았다.

대표적인 것이 율곡 이이선생의 어머니인 신사임당과 아버지인 이원수가 강릉 오죽헌에서 살았으며,

이이선생이 오죽헌의 몽룡실에서 태어났던 것이다.
인현동의 옛 이름은 건천동이다.

인현동이라고 하면 중구 인현동2가・예관동에 걸쳐 있는 지역이다.

이곳 고개에 선조의 일곱째 아들인 인성군이 살았다고 하여

‘인성붓재’ 혹은 ‘인성부현・인성현’이라 불렀으며, 줄여서 ‘인현’이라고 부르게 되었다.
이순신장군은 이곳에서 세 살 위인 유성룡과 가까이 지냈다.

그래서 유성룡이 쓴 『징비록』에

‘그가 매우 영특하고 활달해서 아이들과 함께 나무를 깎아 화살을 만들어 전쟁놀이를 즐겨했는데,

자라면서 말을 잘 타고 활을 잘 쏘았으며 글씨도 잘 썼다.’

고 적었다.
을지로 3가역 7번 출구로 나와 오른쪽 돌아 명보아트홀 쪽으로 가다 보면 인도위에

다음과 같은 글이 쓰여 있다.



‘충무공 이순신장군의 거리’라고 인도에 써있는 길을 따라 5분 정도 가다보면 명보아트홀이 나온다.

이순신장군을 만난다는 설레임으로 가득차 있었다. 드디어 명보아트홀이 보인다.
그러나 아쉽게도 중구 인현동 명보아트홀 앞에는 ‘이순신장군 생거터’라는 표지석만 덩그러니 있어서

안타까울 뿐이다.



이순신장군 생가터 표지석과 명보아트홀

그런데 실제 이곳은 이순신장군의 생가터가 아니라고 한다. 실제는 이곳에서 200여M 떨어진 을지로교회 옆에 있는 신도빌딩이라고 한다. 생가터를 찾으시는 분들은 을지로교회를 찾으면 바로 그 옆건물이다. 조금 더 신경을 써서 이순신장군의 생가터를 만들었으면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더구나 생가터 앞에 주차를 하는 경우가 있어 사진 촬영을 하는데 어려움도 많다. 그래서 사진도 약간 옆으로 나왔다. 위기에 처한 나라를 구한, 일본이 자랑하던 전쟁주범인 도조히데기까지도 존경을 하던 이순신장군의 생가터가 이처럼 소홀히 관리되는데 아쉬움이 남는다. 이런 곳이라면 주차도 금지시키고 관리도 세심하게 하길 바라는 마음뿐이다.


원래 이순신장군 생가터라고 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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