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고 배우는 인물사/인물여지도

고성 기생 월이

윤의사 2019. 12. 15. 15:52

일본이 본격적인 조선과 명나라에 대한 정복을 위한 준비를 하였다.

가장 중요한 정보를 얻기 위해 도요토미 히데요시는 승려 게이테쓰 겐소 등을

공식 사절로 조선에 파견하였다.

게이테쓰 겐소는 부산에서 한양까지 가는 동안 이곳저곳을 다니면서

지역의 주민이나 수령들과 만나 이야기를 하면서 조선의 사정을 알아나갔다.

평소에 보름 정도 걸리던 한양가는 길이 한 달 이상 걸리거나, 조선에 6개월 이상 머물기도 하였다.

도요토미 히데요시는 사절을 통한 공식적인 정보 수집 외에 세작(밀정)을 보내어 조선 팔도를 누비며

지도를 만들어 용이한 침입로를 확보하고자 하였다.

그 중 한 명이 고성 지역으로 왔다. 고성 무학리에는 무기정(舞妓亭)’이라는 주막이 있었다.

이곳에 월이라는 기생이 있었다. 그녀는 얼굴도 곱고, 글도 뛰어나며 춤과 각종 악기를 다루는데도 능했다. 그리하여 고성 관아에서도 늘 월이를 탐하고자 하였다. 그러나 월이는 자신의 마음에 드는 남성이 아니면 만나주지 않았다. 그녀는 고성관아의 관리가 수청을 들라고 하면 처벌받을 것을 각오하고 거절하였다. 워낙 그녀의 뜻이 강한 지라 관리들도 함부로 하지 못했다.

고성 관리의 힐란에 월이는 마음도 풀 겸 무기정 뒷산에 올랐다. 이때 산 중턱에 삿갓을 깊게 눌러쓴 스님이 바위에 걸터 앉아 그림을 그리고 있었다. 옆모습이 사내다움과 지적인 냄새가 품어져 나왔다. 월이의 마음이 사내에게 흔들렸다. 월이는 아쉬움을 뒤로 한 채 사내와 다음 만남을 기대하며 무기정으로 왔다.
1년이 지난 선조 24(1591) 가을 어느 날,

경상도 지역의 해안선을 살펴보면서 침입로를 확보하기 위해 스님의 행색을 한 세작이 왔다.

저녁이 되어 세작은 무학리에 있는 술집 무기정으로 들어오니 월이는 이내 사내를 알아보았다.

월이가 1년 만 본 세작의 모습은 여전히 멋진 사내였다.

세작은 아침을 먹고 나간 뒤 저녁에 들어왔다. 그리고는 밤늦게까지 불이 켜져 있었다.

월이가 술상을 차려 세작에게 청하자 못이기는 척하면서 월이가 따라 주는 대로 술을 마셨다.

그런데 술을 많이 마시지 못하는지 세작은 이내 술에 취해 쓰러졌다.

술에 취해 잠에 떨어진 세작의 품속이 보였다. 품 속에는 비단 보자기를 여러 겹으로 싼 물건이 보였다.

월이는 호기심이 생겨 살그머니 비단보자기를 꺼내 풀어보니 왜놈들이 우리나라를 쳐들어왔을 때

위기에 닥치면 도망갈 수 있는 바닷길과 육상 도주로를 그린 지도였던 것이다.

월이는 고성 당항만의 지형을 휜히 알고 있었다.

그녀는 지도를 보고 소소포(지금의 고성천 하류)와 죽도포(지금의 고성읍 수남리)2km 가량의 육지를 마치 바다가 서로 연결 되어 있는 것처럼 세작의 지도 위에 해로(뱃길)를 세작이 보아도 모를 정도로 절묘하게 그려 넣었다. 통영군과 동해면, 거류면을 섬으로 만들어 놓은 후 지도가 들어 있는 보자기를 세작의 품속에 다시 넣었다. 다음 날 아침이 돼 세작은 월이에게 인사도 없이 무기정을 떠났다.

월이가 바꿔치기한 지도는 임진왜란 때 왜군이 사용하다가

당항포에서 퇴로가 막혀 이순신장군이 이끄는 수군에 의해 전멸했다.

 월이가 그린 지도 덕분으로 이순신 장군은 퇴로가 막힌 왜군을 섬멸할 수가 있었던 것이다.

세작으로 왔던 왜군은 무기정을 찾아 자신을 속였다며 월이를 죽였다.


당항포 해전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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