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역사문화사전/밥상 위의 한국사

말복

윤의사 2019. 8. 10. 19:35

복날은 보통 10일 간격으로 오고 있다. 해에 따라서는 중복과 말복 사이가 20일 간격이 되기도 하는데,

이를 월복(越伏)’ 이라 한다. 삼복, 복날 할 때 왜 ()’이라는 글자를 쓸까?

최남선의 조선상식에 의하면 여름의 더운 기운을 제압하고 굴복시킨다.’는 의미의

서기제복(暑氣制伏)’을 뜻한다고 풀이하고 있다.

삼복의 유래는 중국 진나라 때에 인간을 괴롭히는 벌레들을 물리치기 위해

성 안에서 개를 잡아 삼복 제사를 지내는 풍습이 있었는데,

이러한 제사 의식이 현재의 복날이 되었다고 전해진다.

무더위를 이기고 기운을 되찾아주는 대표적인 복날 보양식으로는

사철탕, 삼계탕, 추어탕, 민어 등을 꼽을 수 있습니다.

삼복(초복, 중복, 말복)이면 으레 우리나라 사람들이 즐겨 먹는 음식 중에 개장국이 있다.

다른 말로 개장, 구장(狗醬), 지양탕(地洋湯), 보신탕(補身湯)이라고도 한다.

이 풍속은 중국의 진(), ()시대 이래로 내려오는 풍속이다.

중국 한대에 정부에서 여름철에 신하들에게 육미(肉味:고기죽)를 나누어 주었다고 하는데

이것이 우리에게 들어와 고기를 먹는 풍습으로 바뀐 듯하다.

중국 고대에는 양고기를 끓이고 염소고기를 구워 먹었으며,

염소를 죽여 도성(都城) 네 군데 문(사문:四門)에 내걸어 병을 예방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나라에서는 양이나 염소가 귀했으므로 개를 잡아 끓여 먹었으며,

중국처럼 사대문에 죽여 내거는 일은 없었다.

특히 개는 가정에서 남은 음식 찌꺼기를 주어도 자라는데 아무 문제가 없었으므로

일반 백성들이 키우기에 안성마춤이었다.

더구나 일반 백성들은 고기를 섭취할 경제적 능력이 부족하므로

여름철에 단백질을 보충하는데 견()공이 제격이었던 것이다.

이 때 개고기를 먹지 못하는 이를 위해 생각해낸 것이 쇠고기로 흡사 개장처럼 끓이는 육개장'이다.

그러므로 육개장도 삼복지간에 먹는 절식(節食)의 하나였다.

삼복은 하지(夏至)가 지난 뒤 세 번째 경일(庚日)을 초복(初伏)이라 하고,

네 번째 경일을 중복(中伏), 입추(立秋) 후 첫 경일을 말복(末伏)이라 한다.

그 사이가 10일간이다.

그런데 월복이라 하여 중복과 말복 사이가 20일간으로 길어지는 때를 가리키며,

이 월복에는 무더위도 더욱 기승을 부린다.

복날이 되면 서울의 상인들은 장사를 하지 않고,

음식을 마련해 교외의 숲속이나 냇가로 가서 마음껏 놀고,

음식을 먹었으므로 상인들은 덥기는 하지만 복날 오기를 기다렸으며,

이 때 먹는 술은 몸에 좋다고 하여 약소주'라 하였다.

그러므로 복날이 가까워지면 사철탕에 들어갈 개가 많이 필요해 개값과 과일값이 올랐다.

이러한 풍속이 남아 개장국이 보신탕이 되어 남아 있는 것이다.

특히 우리나라에서는 병을 앓고 난 환자가 건강을 회복하는데

누런 개(黃狗)가 좋다고 하여 황구를 일등품으로 치고 있다.

그래서 우리 조상들은 삽살개나 진돗개 등 사람들의 사랑을 받아오던 애완견은 먹지 않았고,

식용으로 사용된 것은 오로지 황구(黃狗)였다.


참고로 필자는 먹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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