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고 배우는 문화유산/박물관은 살아있다

정하상

윤의사 2019. 5. 19. 11:36

서울 명동성당에 가면 서울대교구역사관이 있다.

이곳에 가면 우리나라 천주교의 역사를 살펴볼 수 있다.

우리나라 천주교에서 많은 순교자가 있다.

그 중에 정하상이 있다.

정하상의 세례명은 바오로이며, 약종의 아들이며 약용의 조카이다.

정조가 세상을 떠나고 안동김씨의 세도정치가 시작되면서

남인을 제거하기 위해 일으킨 1801년 신유박해로

아버지와 형이 처형되었다.

신유박해로 조선의 천주교 신자들을 이끌던 주문모 신부가 순교한 후에

정하상은 20세 때에 서울로 와서 교회를 다시 일으키기 위해

신자들을 모았다.

한편 주문모 신부의 순교로 천주교를 이끌 지도자가 필요하다는 생각으로

현석문 등과 함께 성직자를 조선으로 모셔오기 위해 노력하였다.

정하상은 9차례나 베이징을 오가며 베이징의 주교에게 성직자를

보내주도록 요청하였다.

이것이 생각대로 되지 않자 직접 교황에게 청원서를 써서

성직자의 파견을 요청하였다.

정하상의 편지를 받은 그레고리우스 10세는 1831년 베이징 교구에

소속되어 있던 한국교회를 조선교구로 독립시켰다.

정하상은 1837년에 조선교구 제2대 교구장으로 부임한

앵베르 주교에 의해 신학생으로 선발되어 신학교육을 받게 되었다.

1839년 기해박해로 가족과 함께 체포되어 고문을 받았으며,

같은 해 815일 유진길 등과 함께 처형되었다.

저서로 상재상서(上宰相書)를 써서 천주교 교리의 정당함과

천주교와 유교와 근본이 다르지 않다고 주장하였다.

상재상서(上宰相書)는 황사영의 백서(帛書)와 함께

한국 천주교회역사를 알려주는 자료이다.



정하상바오로 초상화



상재상서(上宰相書)



1826년 교황에게 선교사 파견을 요청하는 편지




황사영의 백서(帛書)』내용 중 청나라와의 마찰 부분을 삭제, 축소해 제작한

황사영 백서(帛書) 일명 진주사 등본백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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