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고 배우는 문화유산/박물관은 살아있다

대한 콜랙션3

윤의사 2019. 3. 2. 16:14

청자상감운학문매병


매병은 구연부(병의 입구)가 좁고 낮으며 어깨는 넓으며 밑이 홀쭉하게 생긴 병이다.

매병은 송나라에서 시작되어 송나라의 영향을 받았지만,

도자 기술이 발전하여 고려 사람들은 독창적인 상감 기법으로 매병을 만들어 세련미의 극치를 보여준다.

고려의 대표적인 매병인 간송미술관 소장품(국보 68호)은

높이가 42.1cm, 입지름 6.2cm, 밑지름 17cm인 상감 청자이다.

상감 청자는 청자의 표면에 그림을 그려서 파낸 자리에 다른 색의 흙을 메우고 유약을 발라 구운 것이다.

운학문은 구름과 학을 새긴 무늬이다.

원안에는 상공으로 날아오르는 학이 마흔 여섯 마리,

원 밖에는 지상으로 내려오는 학이 스물 세 마리를 그렸다.

청자상감운학문매병은 '천학매병'이라고도 불리는데,

도자기를 돌리며 감상하면 천 마리의 학이 구름 사이를 나르 듯이 보이기 때문이라고 한다.






청자상감운학문매병 구입 일화

-청과 시장에서 사과 몇 알 사듯 청자 상감운학문 매병을 냉큼 사버린 간송.

이 매병이 발굴되기가 무섭게 골동 거간(중간상인)의 손에 넘어갔으며, 그 거간은 당시(일제 강점기) 대구에 있던 일본인 단골 수장가에게 팔려고 하였으나 이미 일본으로 떠났기 때문에 허탕치게 되고 말았습니다. 이후 그는 치과 의원을 개설하고 있던 신창재 씨에게 가까스로 4천 원에 넘기고, 푹 한숨을 내쉬었던 같습니다. 그 이유는 신씨가 서울 필동에 살던 일본인 골동상에게 이 매병을 넘겼는데, 그 가격은 알 수 없으나 신씨가 훨씬 많은 돈을 받고 팔았을 것으로 짐작되기 때문입니다. 조선 총독부에서 또 이 매병 구입을 위해 만 원까지 내겠다고 하였으나 금액 차이 때문에 결렬되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일본 골동계 인사들의 입이 딱 벌어질 정도로 놀라운 일이 일어났습니다. 당시(일제 강점기) 식민지 백성으로 무시받던 우리나라의 한 청년이 청과 시장에서 사과 몇 알 사듯 청자상감운학문 매병을 한 푼도 깎지 않고 대금 이 만 원을 주고 사버리고 만 것입니다. 이 청년이 간송 전형필 선생입니다. 이 만 원은 당시 서울에서 쓸 만한 기와집 20 채를 살 수 있고, 시골에서 전답이 백 석지기 있으면 부자로 인정 받으며 일생을 잘 살 수 있었습니다. 이 만 원이면 전답 수 백 석지기 값입니다.


-설명문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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