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고 배우는 문화유산/박물관은 살아있다

대한콜랙션4

윤의사 2019. 3. 9. 19:26

백자청화철채동채초충난국문병


1936년11월22일 경성미술구락부는

일제강점기 경성에서 고미술 경매를 전담한 유일한 단체였다.

일제강점기 금융계 종사자였던 대수장가 모리 고이치가 죽으면서

유족에 의해 경성미술구락부에서 유치, 경매가 이루어졌다.

그가 소장한 물건 중  백자청화철채동채초충난국문병이 경매에 나왔다.

간송 전형필(1906~1962)과 일본 무역상 야마나카 상회가 끝까지 경쟁하였다.

경성미술구락부는 일본인들이 우리나라 문화재를 합법적으로 반출하는 창구였기에,

간송은 일본인 대리인 신보를 통해 야마나카에게 가는 것을 막기 위해

500원, 1000원, 3000원, 9000원, 1만원….

조선 도자기가 400~500원 선에서 경매가 이뤄지던 때였고

신보가 야마나카보다 10원씩 더부르면서 간송이 "1만4580원"을 응찰했다.

기와집 15채를 살 수 있는 엄청난 가격이었다.

농부가 발견하여 참기름병으로 쓰다

일본인 수집가의 눈에 띄여 여러 수장가들의 손을 거친 백자청화철채동채초충난국문병

간송이 보화각에 전시하여 우리 민족에게 보여주고픈 마음이었다.

백자청화철채동채초충난국문병은 국보 제294호로 지정되었다.

당시 수장가들 사이에서 골동은 기생과 같아 주인을 만나더라도

더 좋은 주인이 나타나면 그 품에 안긴다는 우스개 소리가 있었다고 한다. 

 간송이 모리나 야마나카보다 더 좋은 주인이었던 셈이다.


백자청화철채동채초충난국문병




붉은 색, 푸른 색 그리고 짙은 갈색의 3색을 한폭의 그림처럼 단아하게 표현하였다.

양각된 국화와 나비는 마치 살아있는 것처럼 생생하고,

푸른 난초도 온도를 조절해 금방 뻗어나올 듯 하다.

당시 최고의 기술을 보여주는 것으로

오늘날 반도체 기술과 비교될 것이다.

또한 이 작품은 도자기를 만드는 도공과 그림을 그리는 화공이

함께 만든 합작품이다.


야마나카는 유럽과 미국에 동양의 물건을 소개했다는 평가와 함께

동양의 보물을 유럽과 미국에 유출한 장물아비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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