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고 배우는 문화유산/박물관은 살아있다

대고려 찬란한 도전, 안향

윤의사 2019. 2. 10. 08:45

고려 충렬왕 때의 유학자

우리나라 최초의 성리학자로 주자를 존경하여 주자의 호를 따서 자신의 호를 지었다. 죽은 뒤 문성이라는 시호가 내려졌으며, 자는 사온, 호는 회헌이다.

 

안향은 몽골의 침입으로 나라가 어수선할 때에도 학문에 힘써 열여덟 살의 나이로 문과에 급제하였다. 삼별초가 몽골에 저항하는 운동을 벌일 때 강화에서 삼별초에 잡혔으나, 탈출하여 임금의 신임을 받는 기회가 되었다. 그 뒤 안향은 상주 판관으로 있으면서 백성들의 정신을 홀리게 하는 여자 무당 세 명을 잡아서 엄하게 벌주어 미신을 없애는데 공을 세우기도 하였다.

 

성리학을 수입하다

안향은 원나라로 가서 10여 년간 머물면서 성리학을 배웠다. 성리학은 송나라 학자 주희가 내세운 유학의 한 부류로, 우주의 원리와 인간의 본성을 연구하는 학문이다.

당시 고려에서 불교는 나라를 이끄는 근본 이념으로 매우 큰 역할을 하고 있었다. 하지만 승려들의 부패와 사치, 불교계의 분열 등으로 점차 부정적인 모습이 더 많아지고 있었다.

그래서 안향은 공부를 끝내고 성리학을 소개하는 많은 책들을 모아서 고려로 돌아왔다. 안향은 귀국한 뒤 성인의 도는 바로 현실 생활 속에서 윤리를 실천하는 것이다. 자식된 자는 효도하고, 신하된 자는 충성하고, 예의로 집안을 다스려야 한다면서 성리학에 힘쓸 것을 권하였다.

안향이 들여온 성리학은 고려 후기의 사상을 크게 변화시켰으며, 이후 조선 시대에는 500여 년 동안 나라를 다스리는 근본 이념이 되었다.

 

국자감을 학문의 중심으로 삼다

안향은 원나라의 지배를 받고 있는 고려가 발전하기 위해서는 어린 청소년을 교육시켜야만 된다고 생각하였다. 그래서 국자감에 경사교수도감을 설치하여 유교 경전과 역사에 뛰어난 사람들을 뽑고, 우수한 학생들을 지원하는 장학 재단인 섬학전을 설치하였다. 섬학전은 관리 가운데 6품 이상은 은 1, 7품 이하는 베를 내게 하여 그 이자로써 장학금을 주는 것으로, 예종 때에 만들어진 양현고를 보완한 제도이다.

그리고 국자감에 대성전을 만들어 공자의 영정을 모셨으며, 유교 경전과 역사책, 그리고 제사를 지낼 때 쓰는 제기를 갖추어 학생들이 공부하면서 유명한 유학자들을 존경할 수 있는 바탕을 마련해주었다.

 

Tip) 서원

서원은 조선 중기 이후에 지방에 세워져 이름난 유학자를 제사지내며 성리학을 교육시키던 곳이다. 우리 나라 최초의 서원은 1542년에 경상도 풍기 군수 주세붕이 풍기군 백운동 안향의 생가에 사당을 지어 제사 지내고, 유교 경전을 모아 학생을 가르친 백운동 서원이다. 백운동 서원은 이황이 풍기 군수로 오면서 1550년에 임금이 직접 내려준 현판(사액)을 걸고, 토지와 책을 받는 사액 서원이 되었다. 그러나 서원이 붕당을 형성하며 금과 군역을 면제받는 장소로 바뀌면서 나라의 경제가 흔들렸다. 그러자 흥선 대원군은 47개를 제외하고 전국의 모든 서원을 없앴다.




오세창선생의 <근역서휘>에 안향의 글,

서글프게 이별할 당시 병든 몸으로 누웠는데

영매 핀 봄이 오니 곱절이나 돌아가고 싶네.

뜻을 이루지 못함은 나의 궁벽함이 아니요

오직 그대와 함께 갑인년에 친구를 믿을 뿐이네.

-기유년 정월 하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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