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고 배우는 문화유산/종묘

종묘 사직단

윤의사 2018. 12. 12. 20:28

서울특별시 종로구 사직동에 위치한 조선시대 단묘(壇廟)가 있다. .

사직단은 도성의 서쪽에 위치하였다. 조선시대 토지의 신인 사()

곡식의 신인 직()에게 제사를 지내던 곳이다.

사단은 동쪽에, 직단은 서쪽에 설치하였다.

전통사회에서 곡식을 생산하는 토지와 곡식은 가장 중요하였다.

그러므로 전통사회에서 사직은 종묘와 함께 국가의 근본이었으며,

태조는 도읍을 한양으로 옮기면서 1394년에 사직단을 관리하기 위한 사직서를 설치하고, 1395년 경복궁 동쪽에 종묘를, 서쪽에는 사직단을 만들었다.

사단은 국토의 안정을, 직단은 곡식의 풍년을 기원한 것이다.

땅을 나타내는 사단(社壇)은 우리가 밟고 다니는 흙으로 덮여 있지만, 그 안에는 오방색에 따라서 청토(), 백토(), 적토(), 현토() 그리고 황제를 상징하는 황토(중앙)로 다섯 구역을 나눠 채웠다. 곡식의 풍년을 뜻하는 직단에서는 겉과 속을 우리가 밟고 있는 흙으로 채웠다.

사직단의 출입문으로 동쪽에 위치하고 있다.

현재의 사직단 정문은 임진왜란으로 1592년에 불에 탄 것을

다시 지은 것으로 추정된다.

정면 3, 옆면 2칸의 맞배지붕이다.

서까래 마구리에는 보상화문으로 마무리 하였다.

사방을 담장으로 둘러싸고 4개의 신문(神門)을 설치하였다.

사직단 주위로 낮은 담을 쌓았으니, 이를 유라고 한다.

이중의 담으로 보호한다는 것은 국가의 중요한 제사시설이었음을 뜻한다.

사직단 주위에는 ''라는 낮은 담을 둘렀다

신문(神門)이 설치된 담과 함께 이중의 담으로 보호된다.

이중 담이 설치되었다는 것은 국가의 중요 제사시설이었다는 것을 알려준다.

사단과 직단은 7.65m의 정사각형이며 높이는 1m로 되어있다.

네모는 땅을 상징하며, 원은 하늘을 상징한다.

4가 죽음과 관련있다고 하지만,

전통사회에선 안정적인 숫자가 ’4‘이다.

담장도 사각형, 신문(神門)도 네 개.

제단으로 들어가는 유문도 네 개이다.

병자호란 때에는 강화도로 옮겨지기도 했다.

1897년 대한제국이 수립되면서 사직단도 태사와 태직으로 승격되었다가,

일본의 식민 지배를 받으며 공원이 되면서 기능을 잃어버렸다.

 

 

 

 

사직단 정문, 서까래 마구리에는 보상화문

 

 

 

 

 

 

 

 

밖을 둘러 싼 담과 안을 둘러싼 '유'라는 낮은 담으로 둘러쌓여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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