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로 3주째 폭염이다.
멀리 가자니 도로가 꽉 막혀 가기가 겁난다.
해서 가까운 평택의 지영희 국악당을 찾았다.
지영희의 본명은 지천만이다.
1909년 무속신앙을 하는 집안에서 태어났다.
일제는 우리 음악의 단절을 꾀했습니다.
음악을 하기위해, 또는 구경하기 위해 모인 사람들이
독립운동을 할 것을 두려워했기 때문입니다.
지영희는 구전으로만 전해오던 우리 음악을 자전거를 타고 다니며,
음악을 수집하였다.
그것을 후대에 전하기 위하여 악보로 만들어
서양 중심 음악일색인 교육과정에서
우리 음악을 정립하는데 크게 공헌하였다.
또한 1인 독주회인 산조와
합주라고 할 수 있는 시나위를 선보이기도 하였다.
그러나 국악협회에서 제명되어 하와이로 가서 활동을 하다가
1980년에 세상을 떠났다.
국립관현악단의 창시자이자 해금 산조와 시나위의 명인이었다.
가족들이 잠을 자는 동안 시끄러울까 목침을 치면서 악보를 정리하였다고 한다.
돈이 없어 구전 민요를 수집하기 위해 타고 다니던 자전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