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고 배우는 문화유산/제주도

추사관

윤의사 2017. 10. 23. 20:32

제주도 서귀포시 대정읍 추사로 44

이곳은 추사가 8년 동안 유배 생활을 했던 곳이다.

조선전기를 대표하는 글씨가 안평대군과 한석봉이라면,

후기를 대표하는 글씨는 김정희이다.

단정하기는 어렵지만 한석봉의 글씨가 인쇄체라고 한다면

김정희의 글씨는 필기체에 가깝다.

평양 기생과 눈이 맞아 외도를 하다가 부인인 예안 이씨에게

사과의 편지를 쓰고 용서를 받는다.

그러나 윤상도 사건에 연루되어 1840년 9월 제주 유배길에 오른다.

화북진을 통해 제주에 도착한 것은 10월,

그 과정을 추사는 다음과 같이 표현하였다.


대정으로 가는 길의 절반은

순전히 돌길이어서

사람과 말이 발을 붙이기 어려웠고

절반을 지난 뒤부터는

길이 약간 평탄하였네.

간혹 모란꽃처럼

빨간 단풍잎도 있었네.

이것은 육지의 단풍과는 달리 매우 사랑스러웠으나

정해진 일정에 황급한 처지였으니

무슨 아취가 있겠는가?


김정희는 대정읍 송계순과 강도순의 집에서

8년 3개월의 유배 생활을 하였다.

추사관에는 전시관과 유배지 때 생활하던 강도순의 집을 복원하여 놓았다.



제주 추사관 임을 나타내준다.


추사관을 감싸는 대정읍성


추사관 입구의 모습



김정희의 제주도 유배 생활은 매우 고독하고 힘들었다.

그는 유배 중에 부인 예안 이씨의 부음 소식에 접하며 더욱 외로웠을 것이다.
그의 오랜 벗이자 제자인 역관 이상적이
청나라에 사신으로 갈 때마다 진귀한 책들을 구해다 제주도로 보냈다.
김정희는 고마움을 표현하기 위해
논어의 한 구절 중 '세한연후지송백지후조야(歲寒然後 知松栢之後凋也 -

겨울이 되어서야 소나무와 잣나무가 시들지 않는다는 것을 알게 된다.)'를 떠올리고
어려움에 처한 자신을 생각하는 진정한 친구의 의미를 알게 되었다고 생각하여

세한도를 그렸다.
작고 허름한 쓸쓸한 집에 소나무와 잣나무 몇그루는 푸르게 자리잡고 있는 그림이다.
세한도를 받은 이상적은 중국에 있는 친구들에게 자랑하니
친구들은 김정희와 이상적의 의리에 감동하여

칭찬하면서 김정희의 처지를 안타까워하는 글을 지어 주었다고 한다.



세한도



예산 추사기념관의 세한도, 제주나 예산이나 모두 복원작품이다. 원본은 국립중앙박물관에 있다.


추사 71세에 쓴 '판전'
추사가 세상과 이별하기 3일 전에, 서울 봉은사에 써 준 현판으로
추사 최후의 작품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추사관의 판전(위)와 봉은사의 원본 판전(아래)














'보고 배우는 문화유산 > 제주도' 카테고리의 다른 글

김정희 유배지  (0) 2017.10.29
추사관2  (0) 2017.10.24
김만덕3  (0) 2017.10.22
제주 속 바다  (0) 2017.10.15
이중섭거리  (0) 2017.10.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