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역사문화사전/밥상 위의 한국사

잡탕이 궁중 별식

윤의사 2017. 9. 20. 13:05

옛날 사람들은 하루에 두 끼를 식사하였다.

두 끼 식사는 임금도 예외가 아니었다.

아침과 저녁을 주로 먹었으며 오전 10시와 오후 5시 정도에 식사를 하였다.

임금들은 두 차례의 식사가 끝은 아니었다.

아침과 저녁을 전후하여 각각 새참으로 두 끼를 더 먹었다. 다과상이었다.

오전에 먹는 다과상을 조다소반과(朝茶小盤果)’, 오후에 먹는 다과상을 야다소반과(夜茶小盤果)’라 불렸다.

오후에 먹는 야다소반과에 9개의 찬이 나왔다.

이를 잘 보여주는 것이 바로 효자로 소문난 정조가 화성으로 능행차를 떠나면서

어머니 혜경궁 홍씨의 회갑을 맞아 준비한 다과상 식단이

원행을묘정리의궤(園幸乙卯整理儀軌)’에 소개되어 있다.

 

 

혜경궁 홍씨 회갑 진찬연 모형(수원 화성박물관)

 

9개의 찬에는 편육·숭어·채만두·각색편·각색당·각색정과·만두과··초장과 함께

잡탕이란 메뉴가 등장한다.

잡탕이라는 말에서 느껴지는 느낌은 궁중에서 먹을 음식의 어원은 아니다.

오늘날 많이 먹는 부대찌개가 1950년대 미군이 주둔하면서

그들이 남긴 잔반을 처리하는 과정에서 생겼다고 하는데, 일종의 잡탕 느낌이다.

하지만 조선시대의 잡탕은 최고의 요리이다.

잡탕의 재료로는 조선시대 최고의 생선이었다는 숭어 전유어에 안심, 두골(頭骨·소의 골), (소의 밥통), 곤자소니(소의 창자 끝에 달린 기름기가 많은 부분), 진계(陳鷄·묵은닭), 저태(猪胎·보에 싸인 돼지 새끼), 저각육(猪脚肉·돼지 다리 고기) 등의 고급 고기를 삶았다. 이를 썰어 양념을 하고 국에 넣어 한소끔 끓인 뒤 간을 맞췄다. 여기에 전복, 해삼, 완자, 표고버섯, 박고지(박을 켜서 말린 것), 실백자(實柏子·) 등을 섞어 뜨거운 국물을 부어 먹었다. 요즘은 맛보기 힘든 별식 중의 별식이었다.

오늘날 잡탕이란 난잡한 모양이나 사물, 또는 난잡한 행동을 하는 사람을 비유하여 이르는 말과는 거리가 멀다. 정조가 어머니인 혜경궁 홍씨를 위해 우리나라에서 나는 가장 좋은 재료들만 엄선하여 만든 국거리로 보통 것과 다른 특별난 음식이라는 것이다. ‘특별한 잡탕이라는 뜻으로 별잡탕(別雜湯)’으로 불리기도 하였다. 효성이 지극했던 정조가 어머니를 위해 만든 음식이니 그 맛은 우리나라에서 만들어진 음식 중에서 최고였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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