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역사문화사전/밥상 위의 한국사

여자들에게 인기있는 두 갈래 무우

윤의사 2016. 11. 9. 08:21

요즈음 사시사철 먹을 수 있는 채소 중의 하나가 무이다. 깍두기, 무생채, 짠지를 비롯하여 무를 이용하여 만들 수 있는 반찬은 다양하다. 우리나라에서 이렇게 무를 다양하게 반찬으로 이용하는데 비하여 서양에서는 주로 가난한 사람들이 형편없는 반찬으로 먹을 때 이용되는 재료로 취급되었다.

무는 지중해 연안에서 많이 재배되었다. 고대 그리스에서는 무가 매우 우수한 농산물로 신에게 바쳐지는 물건이었다. 기원전 2700-2200년 경 이집트에서 피라미드를 건설할 때 노동자들의 식사로 마늘, 양파와 함께 무를 제공했다는 기록이 있다. 무는 비단길을 통해 서역에서 중국으로 전해졌다. 후한서,유분자전>에는 장안을 외적이 포위하였을 때 1천 궁녀들이 무를 재배하여 먹으며 끝까지 저항했다.’ 하여 수절채라고 불리며, 중국 삼국시대에 촉한의 제갈량은 무를 심어 군량미로 이용하여 제갈채라고도 불리운다. 여자들의 속살을 예쁘게 한다고 하여 여자들이 숨어서 먹는다고 하여 미용채라고 불리기도 하였다.

우리나라에는 삼국시대에 중국에서 전해졌으며, 고려시대에 들어와 널리 재배되었다. 이규보가 쓴 가포육영에 보면 무는 소금에 절여 겨울동안 저장해놓고 먹는다.’고 할 정도로 널리 재배되었다.

조선시대에 들어와서는 무가 구황작물로 재배가 권장되기도 하였다. <세종실록> 73, 세종 18(1436) 628일의 기사를 보면

임금이 말하기를,

"무우[菁根]는 구황(救荒)에 있어 크게 유리한 점이 있는 식물이다. 옛 사람이 이르기를, ‘1() 땅에 이를 심으면 1천 명을 살릴 수 있다.’고 하였으니, 어찌 근거 없이 그렇게 말하였겠는가. 우리 태종조와 내가 즉위한 후에도 사무를 맡은 관리가 그 이로운 점을 말한 바 있었으나, 끝내 아직 시행하지 못하고 지금까지 그대로 나왔지만, 여염의 서민들은 다만 겨울철에 먹는 소채로만 이용할 뿐, 아직 많이 심는 자가 없는데, 이는 그 잇점을 몰라서 그러는 것이다. 금년 가을에는 민간에 무우씨를 미리 비축한 자가 없을 것이므로 이를 많이 심게 하기는 어려울 것이나, 금후로는 매년 봄철에 민간으로 하여금 무우씨를 많이 채취 비축하게 하였다가, 가을이 되거던 그해 농사의 풍흉을 막론하고 이를 많이 심어, 구황에 대비하게 하는 것을 일상의 법으로 정하게 하는 것이 어떨까. 또 생각하건대, 대저 민심이란 옛 법에 젖어 새 법을 꺼려하는 법이어서, 무우씨를 심는 것이 비록 흉년에 살게 하는 도리요, 큰 도움이 된다 해도, 생각하건대, 반드시 이에 힘쓰기를 꺼려할 것이니, 이를 억지로라도 심게 할 것인가. 의견을 말허도록 하라."

하니, 모두가 아뢰기를,

"구황(救荒)에 이롭기로는 무우가 가장 으뜸이 될 것이오나, 다만 무지한 소민들이 그 잇점을 모르고 있는 것입니다. 더욱이 살아 나가는 데에 유리한 것은 비록 많이 심게 한다 하더라도 무엇을 꺼릴 이유가 있겠습니까. 금후로는 각 고을의 수령으로 하여금 무우를 심는 것이 구황에 유리한 점을 순순히 권고하고 설득시켜, 봄에 씨를 받아 가을에 많이 심게 하는 것으로서 영구한 법규로 삼도록 하옵소서."

임금이 그렇게 시행하도록 하였다.

 

<성종실록> 성종 12(1481) 519일의 기사에서도 권장하고 있다.

 

무우는 구황(救荒)하는 긴요한 것이니, 여러 도()의 수령들에게 삼밭·채소밭·모밀밭에다 주민들을 권장하여 많이 심게 하소서.

 

아마도 고구마와 감자가 전래되기 전 도토리와 함께 구황작물로 이용된 것 같다. 이처럼 무는 우리나라 사람들의 생활과 밀접하였다. 오죽했으면 노래까지 전할까?

 

처녀에는 총각무우 / 입맞췄나 쪽무우

부끄럽다 홍당무우 / 여덟아홉 열무우

방귀뀌어 뽕밭무우 / 물어봤자 왜무우

이쪽저쪽 양다리무 / 첫날신방 단무우

처녀팔뚝 미끈무우 / 거짓없는 순무우

오자마자 가래무우 / 이화춘풍 봄무우

단군기자 조선무우 / 정이들라 뻐드렁무우

군량대던 제갈채무우 / 추풍낙엽 얼간이무우

크나마나 땅따리무우 / 미끈하다 장다리무우

 

우리나라 여자들에게 무 중에서도 가장 인기있는 것은 두 갈래로 갈라진 무이다    

 

 두 갈래 무, 요즘은 종자가 개량되어 보기가 힘들어졌다.

 

왜냐하면 두 갈래로 갈라진 무를 여자들이 먹으면 아들을 생산한다는 믿음 때문이다. 그래서 여자들은 두 갈래로 갈라진 무를 몰래 가지고 있다가 먹었다고 한다. 이런 연유로 무를 다산채(多産菜)’라고도 한다.

오늘날 무다리는 여자를 비하하는 말이지만, 한시에서는 여자의 예쁘게 생긴 팔을 무에 비유하였다.

무는 소화를 돕는 것으로 알려져 있으며, 속을 따뜻하게 하고 혈액 순환을 좋게 해준다고 알려져 있다. 동의보감에선 내복(萊菔:무를 한문으로 가리키는 말)은 성질이 따뜻하고 맛이 매우면서 달고 독이 없다. 음식을 소화시키고 담벽(痰癖:몸의 분비액이 큰 열을 받아 생기는 병)을 헤치며 입마름을 멎게 하고 뼈마디를 잘 놀릴 수 있게 한다. 오장에 있는 나쁜 기운을 씻어 내고 기침이나 가래에서 피를 토하는 것과 심신이 허약하고 피로한 것을 치료한다. 밀가루와 보릿가루의 독을 제어할 수 있다.”고 하여 무가 소화를 돕고 해독을 한다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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