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천궁은 경복궁 북쪽 동산정원인 녹산(鹿山)과 향원정(香遠亭) 사이에 있다.
1873년 고종에 의해 건립된 건청궁의 '건청(乾淸)'은 '하늘이 맑다'는 뜻이다.
고종이 건천궁을 건립한 목적은
조선 역대임금의 초상화인 어진(御眞)을 모시기 위한 것이었지만,
경복궁에는 이미 어진을 보관하는 태원전(泰元殿)이 있고,
경복궁 중건이 이제 막 끝났으므로 백성들의 부담을 내세워 신하들의 반대가 거셌다.
고종은 흥선대원군의 섭정에서 벗어나 자신의 힘을 과시하고자
신하들의 반발을 무릅쓰고 사비를 들여가며 건천궁을 건립하였다.
건천궁 완공 뒤 고종은 고종의 섭정에서 벗어났지만,
3년 만에 경복궁 대화재로 창덕궁으로 거처를 옮겨야만 했다.
고종은 9년 후인 1885년 건천궁으로 돌아와
우리나라 최초의 등을 밝힌 미국 에디슨 전기회사의 발전기를 설치해 근대화의 꿈을 키워갔다.
고종의 근대화 정책은 1895년 10월 8일 명성황후가 일본인 자객에 의해 시해되는
을미사변으로 주춤거리게 되었다.
바로 그 현장이 건천궁 옥호루이다.
곤녕합(坤寧閤) 옥호루(玉壺樓)는 '땅이 편안하다(곤녕)'과
'옥으로 만든 병(옥호)'이란 뜻으로 나라가 편안한 것이 아닌 불안함으로 일제에 의해 더렵혀졌다.
건천궁은 1909년 일제에 의해 철거되고 그 자리에는 조선총독부 미술관이 들어섰다.
광복 후 한동안 국립현대미술관으로 사용되던 총독부 미술관은 1998년 철거되고,
일제에 의해 강제 철거된 뒤 98년 만인 2007년 10월 18일 다시 문을 열었다.
하지만 문화재의 복원은 복원 자료를 꼼꼼히 챙겨야 하며,
목재나 석재, 그리고 기왓장 하나도 잘 살펴야 한다.
100억원을 들여 복원한 건천궁이
4년 만에 부실이 드러나 안타까움만 더하고 있으니 말이다.
건천궁 입구, 다른 경복궁 건물보다 현대적인 느낌이 난다
곤녕합 서쪽 건물인 녹금당
명성황후 시해의 아픔을 간직한 옥호루
아기자기한 모습을 지닌 건천궁의 굴뚝
'보고 배우는 문화유산 > 경복궁' 카테고리의 다른 글
경복궁에서 가장 큰 수정전 (0) | 2012.02.25 |
---|---|
경복궁 풍기대 (0) | 2012.02.21 |
경복궁 향원정 (0) | 2012.02.17 |
경복궁의 침전 (0) | 2012.02.12 |
경복궁 사정전 (0) | 2012.02.0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