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역사문화사전/우리역사문화사전

추노

윤의사 2010. 1. 28. 08:54

한국방송에서 많은 관심을 가지고 방영되는 '추노'라는 드라마가 있습니다.

인조와 소현세자와 관련된 이야기라고도 합니다.

그런데 옛날 우리나라는 도망간 노비들이 많았습니다. 이들을 쫓는 추쇄가 많았습니다. 아마도 이를 드라마한 것 같군요. 이 글은 2010년 1월 28일 중앙일보 '한자로보는 세상'을 쓴 신경진기자의 글의 일부입니다.

 

도망 노비(奴婢)를 잡아 생계를 잇던 추노(推奴)꾼의 이야기를 다룬 드라마가 인기다. 조선시대에는 노비뿐 아니라 부역(賦役)과 병역(兵役)을 피해 도망친 자들을 쫓는 것을 추쇄(推刷)라 불렀다. 추노가 잡아들이던 ‘노(奴)’는 ‘여자(女)’와 ‘오른손(又)’이 결합된 회의자(會意字)다. 본디 노(奴)는 남자종을, 비(婢)는 여자종을 뜻한다. 우리나라 노비제는 고조선 8조법금(八條法禁)의 “도적질한 자를 거두어 노비로 삼는다”는 조문에서 처음 시작됐다. “조선 성종(成宗) 15년(1484)에 추쇄도감(推刷都監)을 설치해 서울과 지방의 노비를 추쇄하니 모두 26만1984명이었다”고 실록은 전한다. 또 “우리나라에서 군역(軍役)에 해당하는 자는 겨우 15만 명인데, 사삿집 종이 40만 명이나 된다”고 실학자 이긍익은 『연려실기술(燃藜室記述)』 별집 ‘노비’편에 기록했다. 그 정도로 당시 도망 노비와 종이 많았다. 그 때문에 노비제 존폐는 어전회의의 단골메뉴로 올랐으나 번번이 존치로 결론났다. 단, 노비를 추쇄하고 빚을 독촉하는 추노징채(推奴徵債)는 흉년이 들면 왕명으로 금지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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