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 칭기즈칸, 몽골어를 고려 왕실에 보내다 ①
우리말이 한자 덮어쓰기를 당한 이후 가장 큰 변화는 몽골의 침략 이후 고려가 몽골제국 원나라의 부마국이 되면서 일어났다. 큰 전쟁이 일어나면 이 전쟁에 참가한 사람들이 말을 갖고 들어오기 마련인데, 몽골족에 앞서 여진족이나 거란족의 침략이 있었지만 같은 북방계열이기도 하고, 전쟁 기간이 짧아 큰 변화는 찾아보기 어렵다. 학문적으로 돋보기를 들이대면 우리말 속에 들어 있는 거란어나 여진어가 뭔지 가려낼 수 있겠지만, 몽골어만큼 많이 들어오진 못했을 것이다. 당시 대몽골제국을 지배하던 쿠빌라이칸의 친딸 쿠틀룩 켈미쉬(忽都魯揭里迷失)가 고려 충렬왕 왕심(王諶)에게 시집을 왔다. 쿠빌라이의 딸이 시집올 때는 노비와 위사, 통역사 등 많은 몽골인이 따라왔을 것이다. 후대의 공민왕이 황조가까지 부르며 그리워했다는 부인도 몽골인 보타시리(寶塔失里) 공주다. 충렬왕부터 공민왕까지 고려 국왕 다섯 명이 맞은 여인은 공주 7명을 포함한 15명의 몽골인 여성이었다. 충렬왕을 이어 왕위에 오른 충선왕의 경우 쿠빌라이가 외할아버지이고, 몽골어를 자유자재로 구사하여, 원나라 황제를 옹립하는 데 앞장설 정도였다. 이런 상황에서 궁중 언어로 몽골어가 상당히 쓰였으리라는 것은 어렵지 않게 짐작할 수 있다. 오늘날 사극이 자주 방영되면서 궁중어 일부가 소개되기는 하지만 철저한 고증을 바탕으로 한 것은 아니다. 먼저 궁중어가 어디서 비롯되었는지 어원에 대한 고찰이 없다 보니, 이런 궁중어가 민간으로 옮겨올 때 막연하게 따라나오고 말아 어원 연구에 큰 장애가 되고 있다. 자신의 부인을 가리키는 마누라, 갓 태어난 유아를 가리키는 아기, 시집 안 간 처녀를 가리키는 아가씨 등이 바로 궁중어에서 흘러나온 말이다. 심지어 여성 애인을 가리켜 ‘자기야!’ 하고 부르는 일이 많은 이 어휘도 사실은 궁중어 ‘자가’ 혹은 ‘자갸’에서 온 것이라고 한다. 그런데 이 어휘들이 대부분 몽골어다. 호칭의 경우 중국에서 흘러온 것이 많은데, 궁중어의 경우는 몽골어가 주류를 이룬다. 임금의 식사를 뜻하는 수라는 설렁탕과 같은 계열의 몽골어다. 몽골 고대어로 국을 실루나 실룬이라고 했다. 무수리는 몽골어로 소녀란 뜻이다. 어쩌면 지위가 낮은 사람을 가리키는 마고소리에서 왔을 가능성도 있다. 어떤 연구에서 궁중어로 쓰이는 조라치가 신라 때부터 전해져 왔다고 단정하는 걸 보았는데, 이 역시 몽골어다. 만일 신라 때부터 이 어휘가 있었다면 신라와 몽골 간에 언어의 친족관계가 가깝다는 의미다. 실제로 몽골어로 들어온 말 중 우리가 이미 쓰던 어휘도 있다. 박수 혹은 박시, 박사가 그런 예다. 우리나라에서는 고대 남자 무당을 가리키는 꽤 오래된 어휘인데, 고려시대 몽골에서 스승을 가리키는 용어로 쓰였다. 백제 시대에 박사는 학식 높은 스승이란 의미로 쓰였다. 우리나라 궁중어를 깊이 연구하지 않은 일부 국어학자들 중에서는 명백한 몽골어 어원을 간과하고 한자어 어원으로 해석하는 경우가 더러 있다.
이재운 <뜻도 모르고 자주 쓰는 우리말 어원 500가지> 대표 저자ㆍ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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