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운 선생님/이재운선생의 우리말 이야기

6. 신라, 우리말을 한자로 덮어쓰다 ②

윤의사 2009. 1. 13. 14:57
6. 신라, 우리말을 한자로 덮어쓰다 ② 오늘날 쓰이는 우리말에는 몽골어, 여진어, 일본어, 영어, 프랑스어, 이탈리아어 등이 매우 다양하게 들어와 있다. 그러다 보니 광복절이나 한글날이 되면 일본어 잔재를 버려야 한다는 결기있는 학자들의 외침이 끊이지 않는다. 하지만 일본어는 지금 우리말로 쓰기에 적절하지 않은 것은 거의 다 빠져나가고 우리말이 돼도 그다지 나쁘지 않을 것들만 남아 있는 편이다. 예를 들어 애창곡을 의미하는 일본어 숙어 십팔번 같은 경우는 남아 있어도 크게 나쁠 게 없다. 난 우리 고유의 음식문화가 아닌 회에 관련된 일본어 정도는 용납해도 괜찮다고 생각한다. 이 정도로도 일제 강점기를 사신 어른들은 화가 날 텐데, 하물며 우리말 속의 한자어를 제대로 살펴보면 그 충격은 백배, 천배 더 클 것이다. 한자어는 이제 우리말이다, 한자는 중국만의 문자가 아니라 동방문자다, 이렇게 우겨도 소용이 없다. 물론 한자어를 쓴다고 나쁘다는 건 아니지만 한자어 때문에 멀쩡히 있는 우리말이 치여 자꾸 사라지기 때문에 문제다. 마치 외래식물이 들어와 우리 고유 수종이나 화훼를 밀어내는 것처럼 한자어가 좋은 우리말까지 몰아낸 경우가 많다. 이것은 우리말에 없어서 들어온 빵, 넥타이, 컴퓨터, 카드, 텔레비전 등과는 다른 경우다. 한자어는 일부 고집 센 유학자들의 열렬한 환호에 힘입어 좋은 우리말을 공격하거나 힘을 못 쓰게 덮어써 버리는 경우가 적지 않았다. 그네 → 추천(韆), 동무 → 친구(親舊), 돼지고기 → 저육(猪肉), 어린이 → 아동(兒童), 윷놀이 → 척사(擲柶), 이름 → 성명(姓名), 잔치 → 연회(宴會), 젖먹이 → 유아(幼兒), 진달래 → 두견화(杜鵑花), 할머니 → 노파(老婆) 일반 생활 어휘가 이럴 때 지명·인명은 말할 것도 없이 ‘서울’ 말고는 한자어가 거의 다 덮어써 버렸다. 지금은 우리가 부르던 이름이 어땠는지 흔적을 찾는 것도 쉽지 않다. 마치 일제 강점기에 우리 이름을 일본식으로 창씨개명한 것과 다르지 않다. 고랑부리 → 청양(靑陽), 내혜홀 → 안성(安城), 달구벌 → 대구(大邱), 매홀 → 수원(水原), 무돌 → 광주(光州), 미추홀 → 인천(仁川), 비사벌 → 전주(全州), 살매 → 청주(淸州), 소부리 → 부여(夫餘), 위례홀 → 한주(漢州) 즉 한양(漢陽) 이에 비해 작은 마을은 오래도록 우리말 이름을 지켜왔지만, 결국 문서로 기록될 때 한자어의 공격을 피하지 못했다. 목숨 걸고 싸우는 전쟁도 아닌데 우린 우리말조차 잘 지켜내지 못하고 있다. 까치재 → 작현(鵲峴), 돌다리 → 석교(石橋), 돌우물 → 석정(石井), 범골 → 호동(虎洞), 새울 → 신탄(新灘), 쇠울 → 금탄(金灘), 숯골 → 탄동(炭洞), 용머리 → 용두동(龍頭洞) 이재운 <뜻도 모르고 자주 쓰는 우리말 어원 500가지> 대표 저자ㆍ소설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