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운 선생님/이재운선생의 우리말 이야기

신라, 우리말을 한자로 덮어쓰다 1

윤의사 2008. 12. 23. 14:07

이재운의 <우리말의 탄생과 진화>

- 신라, 우리말을 한자로 덮어쓰다 1

 

우리나라 사람들은 단일민족이라는 신앙을 굳게 믿고 사는 편인데, 막상 우리말을 보면 그렇지 않다는 걸 알 수 있다. 단일민족이면 그 민족언어가 천년, 이천년 잘 변하지 않거나 조금만 변해 그 과정을 알 수 있어야 하는데 우리말은 수백 년 단위로 큰 변화를 겪어

왔다. 말이 변하는 정도가 아니라 완전히 바뀌는 것 말이다.

 

앞서 말한대로 삼국시대 이전에도 우리말은 큰 변화를 겪었다. 고구려 세력이 남진하면서 들여온 고구려어를 백제 지역 원주민들에게 퍼뜨리고, 신라 쪽에서도 어쩌면 흉노 내지 선비족이 그네들 언어를 가지고 들어와 퍼뜨렸을지 모른다는 주장이 있다. 고구려, 신라, 백제가 각축전을 벌이면서 국경 부근에 사는 사람들은 고구려어, 신라어, 백제어를 수시로 바꿔쓰지 않으면 안되었을지도 모른다.

 

그래도 이 정도는 오늘 얘기할 한자 덮어쓰기에 비하면 큰 변화라고 보기는 어렵다. 삼국의 언어는 기본적으로 계통이 다르지 않기 때문에 어휘가 약간 다른 것말고 큰 차이를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고려 말기에 여진족 세력을 이끌고 쿠데타를 일으킨 아가바토르 이성계와 우르스부카 이자춘, 퉁두란 이지란 등이 고려 사회에 적응하는데 크게 어려움을 겪었다는 기록이 보이지 않는 것도 이런 주장을 반증하는 것이다.

그런데 신라가 백제를 강점한 이후 한반도 남부 지방에 휘몰아친 한자 덮어쓰기는 우리말이 겪은 가장 참담한 일대 사건이었다. 우리말 지명은 모조리 한자 지명으로 바뀌고, 생활 어휘조차 대부분 한자어로 바뀌었다. 뼈대만 우리말이지 나머지는 거의 다 한자어로 뒤덮여버렸다.

 

이 사건이 얼마나 충격적이었으면 그로부터 일천 오백여 년이 지난 지금 내가 쓰고 있는 이 글에서도 한자어가 한 자리 버젓이 잡고 있잖은가. 그러니 오백년 전, 천년 전의 우리말은 한자어가 없으면 거의 글이 되지 않는 수준이었을 것이다. 멀리 갈 것도 없이, 1919년에 발표된 기미독립선언문을 읽어보면 그 참상을 쉽게 볼 수 있다.

멀리 갈 것도 없이, 1919년에 발표된 기미독립선언문을 읽어보면 그 참상을 쉽게 볼 수 있다.

 

- 吾等은 玆에 我朝鮮의 獨立國임과 朝鮮人의 自主民임을 宣言하노라. 此로써 世界萬邦에 告하야 人類平等의 大義를 克明하며, 此로써 子孫萬代에 誥하야 民族自存의 政權을 永有케 하노라.

 

불과 90년 전의 지성인들이 모여 머리 맞대고 썼다는 이 글조차 번역이 필요할만큼 한자어로 어지럽고, 일본식 문법으로 비틀려 있다.

수백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가면 선비들이 쓴 상소문이나 여러 가지 형식의 글을 읽어보면 한국혼이 아니라 중국혼이 물씬 느껴진다. 글만 보면 중국 어느 지방관의 넋두리인 줄 착각할 수도 있다.

 

이 출발점이 신라의 백제 강점기다. 이때 덮어쓴 한자어가 오늘날까지 우리말의 세계화에 큰 장애가 되고 있다. 내가 일부러 <뜻도 모르고 자주 쓰는 우리 한자어 1000가지>를 지은 것도 이러한 한자어가 우리말 속에 너무 깊이 스며들어 무슨 암구호나 난수표처럼 은밀히 쓰이고 있기 때문이다. 뜻이 뭔지 잘 모르고 쓰고, 읽고, 말하니 의미가 제대로 전달될 리가 없다.

 

이재운(소설가『뜻도 모르고 자주 쓰는 우리말 어원 500가지』대표 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