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운의 <우리말의 탄생과 진화>
- 고구려어는 다 어디로 갔을까?
일본어에서 청국장을 가리키는 미소, 된장을 가리키는 미순이 고구려어라는 사실은 여러 문헌에 나온다. 미소와 미순은 우리말에서는 사라졌지만 일본어에는 그대로 남아 있다. 이처럼 한반도에서 미소와 미순이 사라질 때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고구려 중북부(지금의 중국 동북지대)가 당나라에 강점된 후 고구려 남부인 한반도 북부에서 쓰던 고구려어는 신라말과 충돌하면서, 아마 된장과 간장, 청국장과 싸우다 없어진 듯하다. 고려 때까지는 고구려어가 상당수 살아 있던 흔적이 있는데, 조선시대 이후 한자 중심의 성리학 사회가 되다보니 그나마 깡그리 없어진 듯하다.
일본어에 남아 있는 말 중에서 이쑤시개를 가리키는 요지도 실은 고구려에서 쓰던 한자어다. 양지라고 하던 말을 우리는 양 치질이라는 다른 말로 바꾸어쓰고, 일본은 양지를 일본식으로 발음해서 써왔는데, 그게 요지다. 이걸 일본어라고 하여 우린 이쑤시개로 바꿔쓰는데, 결국 양지라는 말에서 이쑤시개와 양치질 두 어휘로 갈라진 셈이다. 이쑤시개라는 무지막지한 말보다는 양지가 나은데 다시 살려쓰는 것도 좋을 것같다.
오늘날 일본어를 보면 우리말이 연상되는 어휘가 굉장히 많다. 아사히신문 같은 경우 한자로는 조일(朝日)이라고 적으면서, 조(朝)는 아사로 읽고, 일(日)은 히로 읽는다. 아사가 아사달이나 아시라고 할 때의 그 아사요, 히가 해를 말한다는 것쯤은 금세 알 수 있다.
지난 번에 적은 백제어 수사(數詞) ‘밀(密=3)’, ‘우츠(于次=5)’, ‘나는(難隱=7)’, ‘덕(德=10)’은 고구려어와 똑같으면서 일본어에도 그대로 살아 있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고구려어는 같은 북방계 언어인 몽골어와 통하고, 같은 고구려 백성이던 여진족이 쓰던 여진어 역시 고구려어와 상당히 밀접했을 것으로 추측할 수 있다. 그러므로 고구려가 비록 당나라에 망한 뒤 고구려어의 실체를 들여다보기 어렵다고는 하나 일본어, 여진어, 몽골어 등을 연구하면 그 흔적이라도 거둘 수 있으리라고 본다.
토끼는 고구려어로 ‘烏斯含(발음은 당시 한자음대로 읽어야 한다)’인데 일본어는 우사기다. 고구려어인 매는 고대 일본어 미두이다. 물을 가리키던 ‘買’, 성(城)을 가리키던 ‘忽’, 우두머리를 가리키던 ‘加’는 여진어나 몽골어와 비슷하다. 물은 퉁구스어로 ‘mu’, 만주어의 'mu-ke‘와 같은데 ‘買’의 발음도 이와 유사했을 것이다. ‘忽’은 오늘날의 골과 비슷한데, 몽골에서는 지금도 쓰인다. ‘加’는 말할 것도 없이 북방어인 칸이다. 이런 예는 수없이 많다.
그런데도 국어사를 연구한다는 학자들 중에 여진어, 몽골어, 거란어, 고대 일본어 등을 파고드는 분들이 드물다는 것도 놀라운 일이다. 또 중국 동북지방에 고구려의 후예들이 살고 있을 텐데, 상상력을 갖고 더 살펴야 하지 않을까.
이재운(소설가『뜻도 모르고 자주 쓰는 우리말 어원 500가지』대표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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