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운 선생님/이재운선생의 우리말 이야기

이재운의 우리말의 탄생과 진화 - 말을 보면 역사도 보인다

윤의사 2008. 12. 20. 21:55

이재운의 우리말의 탄생과 진화 / [난이도 수준-고2~고3]

1. 왜 우리 작가들은 노벨문학상을 타지 못하나
2. 말을 보면 역사도 보인다
어떤 언어든지 백년 이상 시로 읊어지고, 소설로 씌어지고, 연극 대사로 말해질 때 비로소 ‘문학 언어’가 된다. 그것도 기량이 뛰어난 작가·시인이 많이 활동하고, 그 문학을 누리는 독자가 넉넉할 때 그렇다.
영어도 셰익스피어 같은 대문호가 출현하고, 이어서 걸출한 시인 작가들이 다투어 나와 좋은 시와 글을 써댔기 때문에 문학언어로 자리를 잡았다. 스페인어, 독일어, 프랑스어가 대개 그러하다. 일본은 일본어로 문학 활동이 이루어진 역사가 매우 길어서 하이쿠의 경우 600년 역사를 자랑한다.
다만 중국의 백화문은 루쉰(노신)부터 따져 90년 정도밖에 안 되어 상대적으로 문학언어가 되기에 약하다. 하지만 문학인구가 워낙 많아 머지않아 문학언어로 자리를 잡을 것 같다.

하지만 우리말은 그렇지 못하다. 박지원 같은 훌륭한 작가가 있었다지만 그는 한문으로만 글을 썼기 때문에 한글문학 발전에 티끌만한 공도 세우지 못했다. 시조가 있었지만 한시에 밀려 널리 읽히지 못하고, 그나마 이를 즐기는 인구가 너무 적었다.
한글이 우리 문자가 된 지 불과 백여 년 간신히 넘었는데, 그것도 특정 종교에서 줄기차게 써준 덕분에, 또 선각자 몇 분이 간난신고의 노력 끝에 우리 문자가 되었지, 안 그랬다면 어쩌면 나도 한문소설을 쓰고 있을지 모른다. 멀리 볼 것도 없다. 1919년의 기미독립선언문을 읽어보면 우리 한글이 문학언어가 되기에 얼마나 투박하고, 어지럽고, 체계가 없는지 알 수 있다. 엄격한 잣대를 들이대면 우리말이 문학언어로 단련된 기간은 불과 50~60년밖에 안 되었다고 볼 수 있다. 그나마 작가·시인이 너무 적고, 독자층이 두텁지 못하다.
그러다 보니 한글이 아직 문학언어로 다듬어지지 못했고, 이것이 한 이유가 되어 우리 작가·시인이 노벨상을 타지 못한 것이다. 번역 탓이 아니다. 더 좋은 작가, 시인이 나와 우리말로 주옥같은 작품을 자꾸 만들어내야 하는데, 너무 투박한 한글에 갇혀 그러지 못하고, 그래서 그런지 독자가 될 만한 사람들은 다른 데로 관심을 돌린다. 그러는 사이 문법이고 작법이고 다 무시되는 언어가 인해전술로 인터넷을 점령해 버렸다. 이런 식으로 나가면 한글로 쓴 학술논문이 국제 기준 논문으로 인정받지 못하고, 국제회의에서 통용되는 공식언어로 승격되지 못하고, 한글로 쓴 작품은 문학으로 인정받지 못하는 기간이 앞으로 쭈욱, 한없이 계속될 것이다.
그럼 우리나라 문인이 노벨상을 타는 시기는 언제일까? 우리 돈 원화가 국제결제수단으로 인정받고, 더불어 한글로 쓴 논문이 국제학계에서 인정받는 날이 아닐까 싶다.
이제 우리말이 탄생하고 진화한 흔적을 살피면서 그 가능성을 가늠해보자. 우리말도 빅뱅처럼 한꺼번에 수많은 어휘가 생겨나기도 하고, 또 무서리에 쓰러지는 초목처럼 갑자기 사라지기도 하고, 살아남기 위해 변신을 하기도 한다.
 
이재운 <뜻도 모르고 자주 쓰는 우리말 어원 500가지> 대표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