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룡사터에서 걸어서 10분 정도 가면 분황사가 나온다. 경주시 구황동에 위치한 분황사는 선덕여왕 3년(634년)에 세워졌다. 현재 분황사에는 분황사 석탑과 화쟁국사비부, 삼룡 변어정이라는 우물들이 있다. 분황사 석탑은 높이가 9.3m로 벽돌식으로 돌을 다듬어 만든 모전 석탑(石塔)이다. 현재는 3층으로 되어 있으나, 원래는 9층이었다. 분황사에는 다음과 같은 전설(傳說)이 전해온다. 경덕왕때 한기리에는 희명의 어머니가 있었다. 희명은 눈이 먼 아이였다. 희명의 어머니는 희명이를 안고 분황사에 모셔져 있는 천수관음상 앞에 나아가서 노래를 지어 희명이에게 빌게 했더니 마침내 두 눈을 뜨게 되었다. 그 노래는 다음과 같다.
무릎을 곧추며 두 손바닥을 모아 천수관음전에 비옵나이다. 천손, 천눈을 하나를 모아 하나를 덮어 둘다 없는 내몸이오니 하나만 가만히 고쳐 주옵소서. 아아 임은 예사로운 듯 베푸시는데 내게 주옵시는 큰 자비는 너무 커서 말못하겠네.
1000년전이나 오늘날이나 부모님의 자식 사랑은 지극한 것이다.
분황사에 가면 우물이 있다. 부처님의 가르침인 팔정도(八正道)를 본따 팔각형으로 만들었다. 팔정도는 올바른 길로 인도하기 위한 부처님의 8가지 계율로 정견(올바른 견해), 정사유(올바른 생각), 정어(남에게 유익한 말을 함), 정업(착한 행동을 하는 것), 정명(바르게 생활하는 것), 정정진(바른 노력을 함), 정념(건전한 정신 상태), 정정(일에 열중하고 전력하는 것)을 말한다. 이 우물을 삼룡변어정이라고 한다. 세 마리의 용이 산다는 소문을 듣고 원성왕 11년(795년)에 당나라 사신이 이 우물에 사는 용 3마리를 물고기로 변하게 하여 가져갔다. 원성왕은 사람을 시켜 이 용을 찾아다가 다시 우물에 넣었기에 삼룡변어정이라고 했다고 한다. 우물옆에는 원효대사의 화쟁국사비부가 있다. 의상과 더불어 신라를 대표하는 스님인 원효를 기리는 비석이 하나도 없음을 안타깝게 여긴 고려 숙종임금이 ‘대성화쟁국사’라는 시호와 함께 비석을 세우게 했다고 한다. 싸우지 말고 서로 화합하고 지내라는 원효대사의 가르침은 오늘날 우리에게 큰 교훈을 주고 있다. 그러나 이 비석도 비신(碑身)은 어디론가 없어지고 조선시대 말기에 추사 김정희가 썼다는 비대만 남아 있어 아쉬움이 컸다.
분황사모전탑
화쟁국사비부
삼룡변어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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