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역사문화사전/우리역사문화사전

옛날의 냉장고

윤의사 2008. 6. 15. 10:59
한여름에 다른 어느 것보다 인기가 좋은 음식은 얼음이 동동 떠 있는 수박 화채다. 요즈음에는 얼음이 아주 흔하여 그 중용성과 고마움을 잊고 살고 있으나 옛날에 얼음은 아주 귀한 물건이었다. 그럼 옛날에는 얼음을 어떻게 만들어 보관했으며, 신분에 관계없이 아무나 먹을 수 있었는지 궁금해진다. 조선시대나 궁중에서는 평야의 대동강 근처에 사는 사람들이 특산물로 얼음을 보관했다가 일 년 내내 썼다. 이 평양 사람들은 겨울이 따뜻하면 울었다고 한다. 왜냐하면 나라에 얼음을 바쳐야 하는데, 얼음이 얼지 않거나 비록 얼음이 얼었다 하더라도 진상하려고 뜨다 보면 녹기 일쑤였기 때문이다. 여기에서 우리는 겨울에 자연적으로 만들어진 얼음을 저장했다가 썼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이 얼음을 여름에 사용하기 위해서는 보관 창고가 필요했을 것이다. 지금 서울 동네 이름 중에 서빙고동이 있는데, 여기가 바로 얼음을 저장하기 위한 창고가 설치되었던 장소다. 이 곳에는 8개의 얼음 창고가 있었으며 왕실 주방용과 고위 관리들에게 나누어 줄 배급용으로 쓰였다. 이 당시 서빙고의 반대편에 얼음 창고가 하나 더 있었다. 한강 하류 두모포(豆毛浦)에 설치한 얼음 창고로 이곳에서는 나라에 제사에 쓸 얼음을 보관했다. 그런데 우리나라에서 조선시대부터 얼음을 처음으로 사용하기 시작하지는 않았다. 경주 석빙고(石氷庫)는 조선시대 영조 때 만들어진 것이라고 되어 있지만 《삼국사기》에는 처음으로 얼음을 사용한 것이 신라 지증왕 때의 일이라고 기록되어 잇다. 그러니 경주의 석빙고는 이미 신라시대에도 얼음 창고 노릇을 했으리라 추측된다. 특히 신라는 우리나라 남부에 위치하여 얼음을 저장하는 시설이 필요했을 것이다. 그러므로 영조 때 만들었다고 씌어있는 기록은 시설을 보수하고 나서 작성한 것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 신라와 함께 고구려와 백제도 얼음을 사용했다는 기록이 보이며 고려시대에는 요즘 호텔에서 얼음 조각을 한 것처럼 잔치에 얼음 덩어리로 만든 조각품을 사용했다는 기록이 있는 것으로 보아 석빙고와 같은 얼음 창고가 존재했을 것이다. 옛날에 빙고는 단열 재료가 발달되지 않아 온도 변화가 적으면서도 저장과 반출이 쉽도록 하기 위해 반지하 구조로 되어 있었으며 조선초기까지 땅을 일정 깊이로 파고 기둥을 세워 대들보를 얹고 나서 서까레를 걸친 목조 구조였다. 그러나 목조로 만든 빙고는 매년 고쳐야 하는 번거로움 때문에 조선후기에 이르러서는 석조로 바뀌게 되었다. 오늘날까지 석빙고가 남아있는 지역은 경주, 안동, 창녕, 청도, 현풍, 영산 그리고 북한의 해주 등인데 주로 영조 때 만들어지거나 시설을 보수한 것들이다. 이처럼 우리 조상들은 과학적 지혜를 동원하여 여름에 얼음을 저장하는 방법을 일찍부터 깨우쳤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