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조는 자신이나 나라와 관계되는 것들을 기록하는 것을 좋아하였다. 자신의 하루 생활을 반성하면서 세손시절부터 자신과 관계되거나 나라의 중요한 일을 일기 형식으로 써나갔다. 세손 때부터 쓰기 시작하여 임금으로 즉위하고 나서도 계속 적어 나가, 이를 〈존현각일기(尊賢閣日記)〉라 했다. 정조 5년(1781)에 규장각 신하들에게 자신이 일기를 쓰고 있다는 사실을 알렸으며, 정조 9년(1785)부터 규장각 관료로 하여금 <승정원 일기>가 기록하는 왕명의 출납과 각종 행정 사무, 의례적 사항을 적는 것과는 별도로 궁궐의 일과 나라 안팎의 일을 일기를 쓰는 습관을 밝혀 기록하라고 명령하였다. 임금이 하루를 반성하면서 기록한 일기라고 하여 <일성록(日省錄)>이라고 하였다.
이처럼 정조는 자신의 일을 기록으로 남기면서 중요한 의식은 그림으로까지 그려 설명하였다. 정조 19년(1795) 윤2월 어머니인 혜빈 홍씨의 회갑을 맞이하여 수원성과 화산 현륭원을 행차할 때, 그 과정을 일목요연하게 그림으로 기록한 <화성능행도병(華城陵幸圖屛)>『원행을묘정리의궤(園幸乙卯整理儀軌)』는 8첩의 병풍과 의궤이다. 오늘날의 DVD처럼 당시의 역사와 의상, 의식 절차가 자세하게 나와 있다.
또 다른 정조시대의 DVD로는 <화성성역의궤(華城城役儀軌)>를 들 수 있다. 이 책에서는 화성을 지을 때 성을 쌓는 기술, 설계, 물자와 경비와 성을 쌓을 때에 사용한 각종 기계의 그림과 설명이 수록되어 있어 당시 건축기술과 과학의 수준을 이해하는 데 중요한 자료이다.
<화성성역의궤>에서 흥미로운 것은 성을 쌓을 때 부역에 나온 백성들의 이름을 기록하고 있다. 그런데 이때 대부분의 백성들은 이름을 가지고 있지 않은 모양이었다. 그래서 기록된 이름들은 신체적인 특징을 바탕으로 기록하고 있다. 즉 키가 큰 사람들의 이름은 박큰노미(朴大老味), 최큰노미로, 키가 작은 사람들은 김자근노미(金者斤老味), 임자근노미, 임소남(林小男), 김작은복(金者斤福), 구작은쇠(具者斤金) 등으로, 강아지처럼 생긴 사람은 엄강아지나 방삽사리로, 망아지처럼 잘 달리는 사람은 최망아지라고, 눈이 튀어나온 사람은 이부엉이라고 기록하였다. 정조의 홍익인간(弘益人間 : 백성들을 널리 사랑함) 사상에 따라 백성들의 이름까지도 기록한 것으로 보인다.
이렇게 정조가 기록하거나 그림을 그려 남긴 것은 후세 사람들에게 참고가 되게 하기 위함이었다. 정조의 철저한 기록 정신을 엿볼 수가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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