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59년 (음) 5월4일(6월 23일) 40세의 효종이 침을 맞다가 세상을 떠났다.
머리에 난 종기를 치료하던 어의 신가귀는 수전증이 있었는데, 침을 놓던 그가 혈을 잘못 찌르면서 피가 멎지않아 과다출혈로 사망에 이르게 되었다. 형인 소현세자의 죽음에 의혹이 있는 것처럼 효종의 죽음에도 독살설이 제기되기도 한다. 왜냐하면 효종을 염습하는데 시신이 심하게 부어 관이 작아 관짝을 이어붙였다는 이야기도 전하기 때문이다.
효종은 1636년 병자호란에서 아버지 인조가 삼전도에서 '삼배구고두례(三跪九叩頭禮)'의 예를 표하면서 항복하자, 형인 소현세자와 함께 볼모로 청나라에 갔다.
25세의 소현세자와 18세의 봉림대군은 청나라에서 갖은 수모를 겪었다. 1644년 5월 명나라가 패망하고 청나라가 수도 베이징을 점령하면서, 베이징으로 거처를 옮긴 두 사람은 정반대의 길을 걸었다. 소현세자가 독일 출신의 천주교 신부이자 천문학자인 아담 샬과 만나 천문학과 신문물을 만나면서 시대의 변화와 더 넓은 세상이 있음을 알게되면서 '계몽군주'로서 지식을 쌓고 있었다. 반면 봉림대군은 청나라에 대한 복수를 꿈꾸고 있어 늘 눈에 살기가 있었다. 봉림대군이 베이징 시장을 지날 때 점술가가 그에게 "눈의 살기를 가지고 있으면 단명(短命)한다"고 할 정도였다.
명나라를 멸망시킨 청나라에서는 더이상 두 사람을 볼모로 잡고 있을 필요가 없어 귀국하게 하였다. 소현세자가 먼저 귀국하고 봉림대군이 그 후에 귀국하였다. 그런데 소현세자는 귀국 3달만인 인조 23년(1645) 5월 21일, 학질(말라리아)로 세상을 떠났다. 그를 치료한 어의 이형익이 두 차례 침 치료를 했는데, 두 번째 치료를 받은 다음날, 갑자기 소현세자가 갑자기 숨을 쉬지 못하고 땀을 뻘뻘 흘러더니 그날 정오를 넘기지 못하고 그대로 세상을 떠났다. 세자를 본 사람들은 세자의 시신이 마치 약물에 중독된 상태 같았다고 증언했다. <인조실록>에 따르면 세자의 시신은 '온몸이 전부 검은 빛이었고 이목구비의 일곱 구멍에서는 모두 선혈이 흘러나오므로 검은 얼굴 덮개로 얼굴 반쪽만 덮어놓았으나 곁에 있는 사람도 그 얼굴을 분변할 수 없었다'고 기록하고 있다. 인조와 소현세자의 관계는 원만하지 못했다. 인조는 소현세자가 청나라 대신인 용골대(타다라 용골다이)로부터 '대홍망룡의(용이 수놓아진 관복)'를 선물받았다는 소문에 '청나라가 나를 밀어내고 소현세자를 왕위에 앉힐 수 있다'는 불안감으로 아들이 아닌 자신의 경쟁 상대로 생각했다. 인조가 소현세자를 경계했다는 것은 <연려실기술>의 '소현세자가 청 황제로부터 선물받은 벼루를 자랑하자 인조는 불같이 화를 내며 그 벼루를 세자의 머리에 던저버렸다'는 야사를 통해서도 알 수가 있다. 이런 이유 때문인지 관리들이 이형익을 처벌하라는 요구를 물리치면서 사건을 덮는데 급급했다.
소현세자의 죽음과 형수 민회빈 강씨의 사사, 그리고 소현세자의 세 아들이 제주도로 유배를 보내니 더이상 봉림대군을 세자로 삼는데 장애물이 없어졌다. 봉림대군은 세자로 책봉된 지 4년 만인 인조가 즉위 27년(1649) 6월 17일에 53세로 세상을 떠나자 왕위를 이어 조선 17대 국왕이 되었다.
효종은 정통성의 확보가 문제였다. 그러기 위해서는 인조가 청나라에 굴복해 산림으로 돌아간 성리학자들을 끌어들이고 그들의 마음을 잡고자 청나라를 정복해 치욕을 갚겠다는 '북벌론'을 내세웠다. 북벌론은 군사력 강화를 통한 왕권강화를 하기 위한 정치적 구호라고 하겠다. 또한 김육의 대동법을 실시해 민생안정을 꾀했으며, 청나라에서 시헌력을 받아들여 역법을 바구기도 하였다. 이로서 효종은 중흥군주로 평가받고 있지만, 소현세자를 비롯한 형 가족의 죽음을 '선왕(인조)이 일찍이 소현이 현명하지 못한 것을 한탄하였다. 하나밖에 없는 아들도 결코 기업을 부탁할만한 위인이 못된다.' 고 무능을 강조하여 자신의 정통성을 내세우려 애써 외면하려고 했다.
효종은 청나라 점술가의 말대로 40세가 되던 1659년 (음) 5월4일(6월 23일) 에 세상을 떠났다.(사진:궁능유적본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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