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92년 (음)4월 13일(양력 5월 23일), 임진왜란이 일어났다.
일본은 가마쿠라 막부의 힘이 약해지면서 무사들끼리 치열한 세력다툼을 하는 전국시대의 혼란을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일시적으로 통일하였다.
그러나 무사들의 힘을 두려워한 도요토미 히데요시는 그들의 관심을 외부로 돌리기 위해 일으킨 것이 임진왜란이다.
'명을 정벌하러 간다'라는 이유로 '명 정벌을 위해 길을 빌려달라 (정명가도:征明假道) '라며 조선에 요구를 했다.
조선은 명과 사대 관계를 맺고 있어 일본의 요구를 거절하였다. 일본은 이를 핑계로 쳐들어온 것이다.
일본의 움직임을 심상하지 않다고 생각한 조선 정부는 동인에서 김성일, 서인에서 황윤길을 대표로 하여 일본의 움직임을 알기 위해 사신을 파견했다. 서인은 일본의 침략이 있을 것이니 대비를 위해 성을 쌓고 군사를 늘리며 군량미를 확보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반면 동인의 김성일은 쳐들어오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김성일이 이같이 주장한 것은 "오늘날 두려운 것은 섬나라 도적이 아니라 민심의 향배이니, 민심을 잃으면 견고한 성과 무기가 있어도 아무 소용이 없다"라는 이유 때문이지만, 유비무환을 무시한 김성일의 주장은 단지 동인을 대변할 뿐인 것이었다.
전란이 일어나자 선조는 충주에서 신립이 졌다는 소식을 듣고 빗길에도 의주로 피난을 간다.
의주에서 압록강만 건너면 바로 중국 땅이니 일본이 의주까지 오면 바로 명나라로 망명을 떠나기 위함이었다. 도망가는 선조를 보며 백성들은 분노하며 경복궁을 불태웠다. 폐허로 남은 경복궁은 후대의 왕들에게 민심을 두려워해야 한다는 하나의 교훈이 되어 흥선대원군에 의해 재건될 때까지 방치되어 있었다.
의병의 활약, 이순신 장군의 남해 장악으로 인한 왜군의 보급로 차단, 명나라의 원병으로 승기를 자았던 조선은 명나라의 이여송이 벽제관 전투에서 패배하였다. 벽제관에서의 패배는 명나라가 일본에 휴전을 제안하지만 일본의 억지 요구에 3년만에 결렬되었다. 1597년 정유년, 일본이 다시 침략해 들어오니 '정유재란'이다.
정유재란은 임진왜란보다 훨씬 더 피해가 컸다. 일본의 무사들이 공을 세워 일본에서의 입지를 높이기 위하여 적극적으로 전쟁에 참여해 사람을 많이 죽이고 귀와 코를 베어 일본에 보냈다. 죽은 사람에게서 코를 베어다가 소금에 절여 일본에 보내면 공을 높이 치하하게 되니 살아있는 사람들의 코가 베였다. 그래서 생긴 속담이 '눈 뜨고 코 베인다'라는 것이다.
임진왜란은 1598년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죽으면서 끝났다. 그러나 조선에서는 성리학적 체제가 공고히되어 가부장적 가족 제도, 유교 윤리를 강화하였다. 경제적으로도 많은 변화가 이어졌다.
중국에서는 조선 원병에 따른 국력 쇠퇴로 명나라가 멸망하고 여진족의 청나라가 등장하였다.
일본에서는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죽은 이후, 임진왜란에서 끝까지 출병하지 않았었던 도쿠가와 이에야스가 정권을 잡아 새로이 에도에 막부를 열었다.
일본에는 우리나라 퇴계 이황의 성리학, 도자기를 만드는 기술이 전파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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