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동쌤의 역사 속의 오늘은?

간디의 소금행진

윤의사 2024. 4. 6. 14:21

영국은 1882년부터 식민지 인도에 불공정하고도 엄격한 과세 정책을 시행하였다.

인도에서 채취한 소금을 영국으로 가져다 가공한 후 다시 인도에 엄청난 세금을 매겨 되팔았다.

소금령으로 인도인은 소금을 직접 만들 수 없었고, 천일염에 손을 대면 체포되었다.

할 수 없이 인도인들은 영국에서 가공한 비싼 소금을 쓸 수밖에 없었다.

영국의 소금 독점에 반대해 1930312일 간디가 소금 행진을 시작했을 때 79명이 뒤따랐지만

387를 걷고 난 430일까지 300만 명이 함께 했다.

소금 행진은 간디의 사트야그라하중 하나였다. 산스크리트어 사트야(진실)’아그라하(저항하다)’의 조어인

사트야그라하는 인도 독립과 자치를 주장하던 간디가 1920년부터 불복종 운동 등을 통해 영국에 요구했던 것이다.

소금 사트야그라하는 312일 출범해 46, 단디에서 간디는 소금기가 밴 진흙을 손에 쥐고 들어 올리며 선언했다.

나는 소금을 만들어 대영제국의 근간을 흔들겠노라.”

그리고 바닷물을 끓여 불법으로 소금을 만들며, 행진에 참가한 사람들에게 함께 소금을 만들자고 했다.

이후 간디의 말에 따라 인도 전역으로 불법으로 소금을 채취하거나 구매하는 사람들이 폭발적으로 늘어갔다.

간디는 소금을 만들었다고 영국 경찰에 체포되었으며, 함께 체포된 사람은 6만 명이 넘었다.

 

소금을 통해 번진 사트야그라하로 인도인들은 영국의 의류 및 생필품에 불매 운동을 벌이고 부당한 세금을 내지

않겠다는 저항도 벌였다. 이에 영국은 탄압과 검열로 사태를 진정시키려 했지만, 인도인의 저항은 계속되었다.

간디의 계속된 노력으로 인도는 독립했다. 하지만 인도에서 힌두교와 이슬람교로 분열돼 싸우자 간디는 양측의 화해를

촉구하며 단식을 했다. 간디의 생명이 위독해지자, 두 종교 지도자가 화해했고 간디는 단식에서 일어나 증손녀의 부축을

받으며 1948130일 기도회에 참석하려 했다. 이때 간디를 향해 세 발의 총성이 울렸고, 간디는 ! 신이시여라는

말을 남기고 쓰러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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