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동쌤의 역사 속의 오늘은?

오늘은 창랑호 납북 사건 발생

윤의사 2024. 2. 16. 20:24

1958216, 창랑호 납북 사건이 발생했다. 부산수영비행장을 출발해 서울 여의도비행장으로 향하는 대한국민항공사(대한항공의 전신) 소속 여객기 창랑호(더글라스 DC-3 기장:윌리스 P 홉스, 부기장:맥그레렌 미고운 중령)1240분 평택 상공에서 남파 공작원이 총기로 조종사를 위협해 납치된 사건이었으며, 대한민국 역사상 최초의 항공기 납치 사건이다. 승객 29명과 승무원 3명 및 미국 군사고문단원(중령 1)의 비공식 승무원, 34명을 태우고 오전 1130분 이륙한 후 평택 상공에서 납치범들은 승객을 기절시키고 조종사를 총기로 위협하여 평양 순안 국제공항에 착륙시켰다. 승객 중에는 조종사 등 3명의 미국인과 독일인 요한 리트히스 부부 등 외국인 5명이 포함되어 있었습니다. 사건이 발생한 다음 날인 17일 북한 당국은 대한국민항공사가 의거 월북했다고 거짓 발표해 대한민국보다 체제가 우월하다는 것을 북한 주민들에게 심어주려고 했다.

220일 대한민국 경찰은 북한 공작원 김택선, 김길선 형제를 포함한 3명을 범인으로 발표하고, 25일에는 기덕영 등 3명을 사건의 공작과 배후 공작 혐의로 체포했다. 기덕영은 간첩죄 이외의 죄상으로 징역 7년이 선고되었으며, 나머지 2명은 무죄로 풀려났다.

우리나라 국회는 22일 본회의에서 북한 만행을 규탄하는 결의안을 채택했고, UN군에 참가한 16개국에 대해 협력을 요구하는 메시지를 보냈다.

이에 UN군은 24일 군사정전위원회 수석대표가 승객과 승무원, 기체의 조속한 송환을 북한에 요구했다.

북한은 사건 발생 18일만인 36일 납치범으로 의심되는 7명을 제외한 승객과 승무원 26명은 판문점을 통해 송환됐지만 창랑호 기체는 끝내 반환받지 못했다. 북한은 창랑호에 탑스안 승객들을 대상으로 세뇌교육을 실시하였고,

세뇌교육에 협조하지 않는 사람들은 고문을 가하기도 하였다.

창랑호 사건을 계기로 재발 방지를 위해 항공기 탑승자의 총기 등 위험물 소지에 대한 단속과 항공기 운항에 대한 공중 감시를 강화했다.

그러나 KNA 항공사는 창랑호 기체를 반환받지 못하면서 3대의 항공기로 운영되던 항공사가 큰 타격을 받았다. 더구나 195777일 부산 수영비행장에 착륙하는 도중 추락한 만송호가 있어 우남호만 운항해야만 했다.

이에 KNA1959422DC-31, 같은 해 728일 미국 록히드사에서 콘스틀레이션 749A 4발 여객기 1대를 임차해 국내선과 국제선(서울-시애틀의 부정기 운항)에서 운항하였다. 항공기를 운항할수록 KNA는 적자가 늘어나 신용욱 대표는 1961716일 투신자살하면서 19621113KNA는 폐업할 수밖에 없었다.

5.16 쿠테타 후 박정희 정부는 대한항공공사법을 제정해 1962년 국영기업으로 대한항공공사가 설립되었다. 그러나 결항율이 18%, 각종 정비 불량이 겹쳐 1968111일 한진그룹이 대한항공을 인수해 민영화가 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