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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당은 현실을 바로 보아야 한다

윤의사 2024. 1. 21. 10:33

오늘은 1.21사태가 일어난 날이다.

1.21사태는 김일성이 박정히 전대통령을 제거하려고 1968년 1월 21일 124군 부대 소속 무장군인 31명이 청와대를 기습 공격하려던 사건이다.

1월 17일 밤 휴전선을 넘은 김신조를 비롯한 31명은 21일 밤 9시30분경 창의문 근처에서 불신검문을 당했다.

경찰의 불신검문에 특수부대라고 말하며 넘어갔지만, 당시 창의문을 담당한 경찰은 이상을 느끼고 최규식 서장에게 보고하였다.

보고를 받은 최규식 서장은 부관 한 명과 함께 청운동에서 31명을 기다리가 결국 124군 부대의 총격에 부관과 함께 순직하였다. 이때 7명의 승객을 태운 버스가 청운동으로 다가왔다. 124군부대는 이 버스를 자신들을 토벌하기 위한 군인으로 생각하여 사격하였다.

그러나 이 버스는 일반인을 태운 버스였다. 그리하여 결혼을 앞둔 신부, 대학 입학을 앞둔 학생 등 7명이 희생되는 안타까운 일들이 벌어졌다.

124군 부대는 일이 잘못되었다는 것을 알고 북한으로 귀환하고자 하였다.

그러나 그들이 보낸 무선에 북한의 대답을 듣지 못한 124군 부대는 김신조를 제외하고 북한으로 귀환하고자 하였다.

군경합동은 귀환하는 31명 중 29명을 사살하고 김신조는 생포하였으며, 1명은 북으로 귀환하였다.

1.21사태의 유일한 생존자인 김신조가 방송 인터뷰에서 "박정희의 모가지를 따러 왔다"

고 말하면서 향토예비군이 창설되어 북한이 지역에 보내는 간첩에 대한 공포를 주었으며.

고등학교와 대학교에서 교련교육이 실시되었다.

또한 대통령 경호를 강화하는 차원에서 인왕산과 북악산, 청와대 앞길까지 일반인의 통행이 금지되었다.

김일성은 1972년 5월 4일 이후락 당시 중앙정보부장과 가진 비밀회담에서 1·21 사태는 자신이나 당의 의사가 아니었고 내부의 좌경 맹동분자들이 한 짓이라 하며 시인한후 사과 하였다.

민주당 이재명 대표가 김일성과 김정일이 마치 평화주의자인양 발언을 하였다.

그들은 평화주의자가 아니다.

6.25 전쟁을 일으켜 한국군 전사자 137.899명과 유엔군 40.670명, 민간인 사망 244.663명.

북한군 520.000명과 중공군 148.600명이 죽어서 가족에게 슬픔을 남겨 주었다. 

부상자는 그 숫자를 헤아리기 힘들다. 재산상의 손실은 어마어마하다. 

이후에 그들이 저지른 죄악은 판문점 도끼만행사건, 국적기 납치사건, 간첩남파, 아웅산 테러, NLL침범사건, 연평도 포격 등 이루 헤아릴 수 없을 정도의 만행을 저질렀다.

또한 지금 북한 국민들의 생활상은 아마도 한국 역사에서 가장 극빈한 시대 중 하나일 것이며, 인권은 세계 최악의 국가이다. 이러한데도 평화주의자 운운하는 것은 자신들이 보고자하는 것만 바라보는 내재적 역사관에 의한 것이 아닐까?

북한을 바로 직시하고 대한민국 국민들을 위해 마땅히 해야할 일을 찾는 것이야말로 현재 민주당이 추구해야하는 길이 아닐까 한다.

 

최규식경무관

최규식서장의 부관인 정종수 경사
김신조를 제외한 30명이 은거한 호경암, 총탄의 흔적이 보인다.

 


김신조가 숨어있다 생포된 홍지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