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관과 박물관/매헌윤봉길의사기념관

매헌윤봉길의사 상하이의거 90주년, 일본의 심장을 멈추게 하다

윤의사 2022. 4. 24. 10:27

429,

김구와 김해산의 집에서 아침밥을 먹고 나니 일곱 시를 알리는 괘종이 울렸다.

매헌은 가지고 있던 시계를 김구에게 건넸다.

선생님, 제 시계는 6원짜리입니다. 선생님 시계는 불과 2원짜리인데, 저는 1시간 밖에 쓸 수 없으니 바꿔 차시지요.”

백범 김구 시계 ( 上 ) 와 매헌 윤봉길 시계 ( 下 )

 

김구는 눈시울이 붉어졌다. 김구는 수통형과 도시락형 폭탄을 매헌에게 전했다.

그리고 택시를 불러 매헌을 배웅했다매헌은 택시비를 빼고 나머지 돈을 모두 김구에게 주었다.

나중에 지하에서 웃으면서 만납시다.”

김구는 목이 메여왔다.

매헌도 차 안에서 인사를 하였다. 마음이 바쁜 매헌이었지만 그날 따라 차는 천천히 가는 듯 하였다.

이윽고 홍커우공원에 도착하였다. 시계를 보니 750분이었다. 일본 경찰은 보이지 않고 중국인 경비만 있었다.

매헌이 아침 일찍 서두른 이유도 이른 시각에는 일본 경찰이 아닌 중국인이 경비할 것이라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입장권을 보여달라는 말에 매헌은 오히려 면박을 주었다.

매헌의 큰 소리에 경비는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지켜보기만 했다.

일본에서 유행하는 양복과 스프링코트를 입고 일장기를 든 매헌은 여지없는 일본인이었다.

그리고 답사 때 보아두었던 식장의 뒤편에 자리를 잡았다.

이윽고 식이 시작되었다단상에는 시라카와 육군 대장, 노무라 해군 중장, 우에다 육군 중장, 시게미쓰 공사,

무라이 총영사, 가와바타 거류민단장, 도모노 거류민단 서기장 등이 자리했다.

상하이에 살고있는 일본인 1만 명과 상하이 침략 일본군 1만 명 등 많은 사람들이 지켜보았다.

행사는 2부로 열리는데 1부는 사열식, 2부는 축하식이 개최되기로 예정되어 있었다.

가와바타 거류민단장의 축사가 끝나고 기미가요가 불려졌다. 모든 참석자들이 엄숙하게 집중을 할 때

매헌은 식단을 향하여 2m 정도 앞으로 나아가 폭탄을 던졌다. 오전 1150분경이었다.

폭탄이 터지는 소리와 함께 일본인 인사들이 줄줄이 나가떨어졌다.

가와바타와 시라카와 대장이 후에 사망하였고, 많은 중상자가 나왔다.

매헌은 도시락 폭탄을 주우려 했으나 일본 헌병과 군중들에게 둘러싸여 뭇매를 맞고 기절할 정도였다.

비록 얼굴부터 허리까지 피가 흘렀지만 헌병대로 끌려가는 매헌은 태연하면서 차가운 미소를 지었다.

전 세계에 일본의 국력을 과시하기 위해 마련한 전승 행사는 치욕스럽게 일본에게 다가왔고,

일본은 한국의 독립운동가들에게 공포를 가지게 되었다.

그리고 만보산 사건으로 한국인과 감정이 좋지 않았던 중국인들을 감동시켜 오해를 풀게 했으며,

중국 최고 통치자인 장제스는 감격했다.

중국인 100만 대군과 4억 중국인이 해내지 못한 일을 조선인 청년 한 명이 해냈다.”

상하이의거 후 장제스는 무관심하던 대한민국 임시정부에 지원과 예우를 약속하였다.

수통 폭탄과 도시락 폭탄
한쪽 다리를 잃었으며, 1945년 일본이 패망함에 따라 그 해 9월2일 일본 외무대신으로 미 해군 미주리 함더글라스 맥아더 장군 앞에서 항복문서에 서명을 한 시게미쓰 마모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