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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번의 독립 선언 끝에 세워진 우크라이나의 위기

윤의사 2022. 2. 26. 17:40

러시아의 공격을 받아 백척간두의 신세가 된 우크라이나,

위기에 빠진 나라를 조롱하는 민주당과 정부 인사,

만일 대한민국이 북한의 침입을 받는다면 이런 인사들의 언행이 궁금하다.

선조 이균의 모습일까?, 아니면 고종 이재황의 모습일까?

 

우크라이나는 흑토지대의 비옥한 땅을 가지고 세계적인 밀생산국이다.

그리고 우크라이나라는 국가를 갖추고 나라를 유지한 것은 30년 전후이다.

우크라이나에는 9세기 현재 우크라이나의 수도인 키예프에 키예프루시라는 국가가 생기면 형성되었다.

키예프루시공국은 12세기까지 유럽의 大國으로 군림했으며, 훗날 러시아, 벨라루스, 우크라이나의 기반이 되었다.

하지만 13세기 몽골제국 징기즈칸의 침략을 받아 모스크바로 쫓겨나 모스크바 공국이 되었다.

오곳에 몽골의 바투(징기즈칸의 손자)는 킵자크한국을 건국하였으며, 모스크바공국은 킵자크한국에 조공을 하면서도 세력을 키워 모스크바대공국이 되었다. 결국 동슬라브의 종가인 우크라이나는 모스크바에 중심을 빼앗기면서 우크라이나는 '나라없는 민족'의 역사가 되었다. 이것이 약점이 되어 지금의 사태를 키웠다고 하겠다.

15세기에 킵차크한국이 망하면서 몽골후손들은 리투아니아의 도움으로 크림반도에 크림칸국을 세웠다. 크림칸국은 15세기 후반 오스만제국의 공격을 받으며 속국으로 전락하였다.

이제 동슬라브의 중심이 된 모스크바공국이 러시아로 이름을 바꾸고 부동항을 얻기위해 오스만과 전쟁을 하였다. 18세기에는 오스만제국과 8번에 걸친 전쟁 끝에 크림반도를 러시아가 식민지배했고, 우크라이나는 식량공급지가 되었다.

1917년 10월의 볼셰비키 혁명 이후에는 러시아 공산주의 정부가 하리코프에 우크라이나 소비에트 사회주의 공화국을 세우면 소련으로 흡수되었다. 이후 70년 동안 소련의 일원으로 큰 고통을 겪어야만 했다. 

제2차세계대전에 독일에 점령당하기도 했으나, 소련이 승리하면서 과거 우크라이나 땅을 소유한 폴란드·루마니아·체코슬로바키아의 땅까지 우크라이나 소비에트 사회주의 공화국이 차지했는데, 이는 키예프루스이후 우크라이나공화국이 역사상 처음으로 통합한 것이다.

1953년 스탈린이 죽었으나 계속 소련의 지배하에 놓였다가 1980년대말 미하일 고르바초프가 글라스노스트와 페레스트로이카를 시행하면서 우크라이나의 지성인들 사이에 민족주의가 새로이 싹트면서 우크라이나 의회를 민주화시키고 1990년 공화국의 주권을 선포할 수 있도록 했다. 1991년 8월 소련에서 공산당 강경파의 쿠데타가 실패하자 우크라이나 의회는 6번의 독립선언만에 독자적 통치능력을 발휘하는 정부가 1991년 12월 국민투표를 통해 탄생했다.

이후 소련이 붕괴되면서 우크라이나는 전세계로부터 독립을 인정받았다. 우크라이나의 독립과 안정은 유럽과 세계 평화에 중요한만큼 푸틴의 불장난이 빨리 끝나기를 바란다. 그리고 나라를 지킬 힘을 스스로 키우지 않으면 언제든지 강대국의 힘에 무너진다는 사실을 다시 한번 보여주는 실례이다.

우크라이나 국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