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동쌤의 역사 속의 오늘은?

1월 13일 오늘의 역사, 진보당 사건

윤의사 2022. 1. 13. 11:54

1956년 5월 15일에 제3대 대통령과 부통령을 선출하는 선거가 있었다.

이승만과 이기붕의 자유당 후보에 맞서 민주당에선 신익희와 장면, 진보당에서는 조봉암과 박기출 등이 출마했다.

민주당과 진보당에서는 대통령 후보로 신익희로 단일화하였으나,

호남 지역을 유세하던 신익희가 뇌출혈로 사망함에 따라 이승만, 조봉암의 대결이 되었다.

하지만 민주당은 조봉암을 지지하지 않고 신익희 추모표라는 무효표를 던지라고 독려하여

실제 전체 투표자의 20%인 1,856,000 이상의 무효표가 나왔다.

사사오입사건으로 삼선의 길을 연 이승만에 대항하여 야당 단일후보를 지지해야 했던 민주당의 비협조가

조봉암의 당선으로 이어지지 못하게 된 것이다.

개표 결과 56%와 24% 가량의 득표수가 나왔다고 하나, 조봉암의 고향인 강화도에서 2만표 가량이 이승만 표로 둔갑했다는 주장도 있을만큼 조봉암은 '투표에서 이겼지만 개표에서 졌다'라는 말이 나돌 정도였다.

이에 위협을 느낀 자유당은 조봉암이 대선에서 북한의 자금을 받았다는 혐의로 1958년 체포돼 사형선고를 받고 처형됐다. 2011년 대법원은 무죄를 선고했다.

조봉암은 일제시대 3.1운동 등 독립운동에 가담했으며, 조선공산당을 이끌었다.

해방 후 조선 공산당을 탈당하고 반좌익으로 바꾸며 대한민국 초대 농림부장관과 국회부의장을 역임했던 거물 정치인이었으나 안타깝게 누명을 씌워 인재를 잃게 되었던 것이다.(사진 출처:진성규교수님)

어록비

 

망우리에 있는 조봉암 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