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동쌤의 역사 속의 오늘은?

오늘은 한양도성을 처음 착공

윤의사 2022. 1. 9. 14:50

한양도성은 태조 5년(1396) 음력 1월 9일에 처음 착공하여 2월 28일까지 49일 간,

그리고 8월 6일부터 9월 24일까지 49일 간, 도합 98일 동안 연인원 19만 7천 4백여 명을 동원하여 쌓았다.

전체 공사구간(총 5만 9,500척:약 17km)을 600척씩 97구간으로 나누고 각 구간을 천자문 순서에 따라 이름 붙인 뒤

군현(郡縣)별로 책임지게 하였다.

처음에는 평지는 토성으로, 산지는 석성으로 쌓았다가, 세종 때 토성을 석성으로 바꾸었다.

시간이 지남에 따라 허물어진 곳을 숙종 때 크게 보수 · 개축하였고, 이후에 크고 작게 정비하였다.

성을 쌓을 때에는 성돌 일보에 공사에 관한 기록을 남겼다.

한양도성에 새겨진 각자성석. 숙종 32년 훈련도감 관리인인  성세각,전수선 등의 이름이 보인다. 숙종 이후에는 감독관 · 책임기술자 · 날짜 등을 명기하여 책임 소재를 밝히려고 하였다.

 

한양도성은 1899년 도성 안팎을 연결하는 전차가 개통됨에 따라 4ㅐ문과 4소문의 기능이 없어졌고,

1907년에 방문한 일본 왕세자를 위한 길을 넓히기 위해 숭례문 좌우 성벽이 철거되었다.

성문 가운데서도 소의문은 1914년에 헐렸으며, 돈의문은 1915년에 건축 자재로 매각되었다.

광희문의 문루가 1915년에 붕괴되었고, 혜화문은 1928년에 문루가, 1938년에 성문과 성벽 일부가 헐렸다.

일제는 1925년 남산 조선신궁과 흥인지문 옆 경성운동장을 지을 때에도 주변 성벽을 헐어버리고 성돌을 석재로 썼다.

민간에서도 성벽에 인접하여 집을 지으며 성벽을 훼손하였다.

해방 이후에도 도로 · 주택 · 공공건물 · 학교 등을 지으면서 성벽이 훼손되는 일이 되풀이되었다.
한양도성은 전체 구간의 70%, 총 13.7km(2020년 기준) 구간이 남아있거나 중건되었다.

숙정문 · 광희문 · 혜화문을 중건하였지만 광희문과 혜화문은 부득이하게 원래 자리가 아닌 곳에 세워지게 되었다.

(서울시 설명문에서)

한양도성의 사대문, 상 좌측부터 시계방향으로 흥인지문, 사진으로 본 돈의문, 숙정문, 숭례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