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동쌤의 역사 속의 오늘은?

오늘은 음력에서 양력을 정식으로 사용한 날

윤의사 2022. 1. 1. 10:38

일본은 청일전쟁에서 승리한 결과 많은 권리들을 획득했으나 삼국간섭으로 요동반도를 잃었다.

일본이 러시아에 굴복하는 것을 본 명성황후는 일본을 견제하기 위해서는 러시아를 이용할 생각을 하였다.

일본에 의해 임명된 대표적인 지일파인 박영효를 물러나게 한 명성황후는

이범진과 이완용을 기용하여 러시아와 가까이 하면서 일본을 멀리하는 정책을 추진하였다.

일본은 애써 닦아놓은 조선에서의 입지를 하루아침에 잃어버리자, 명성황후를 제거할 계획을 세우게 되었다.

일본은 이노우에공사를 본국으로 소환하고 대신 육군 중장 출신의 미우라를 주한 공사에 임명하였다.

미우라는 흥선대원군을 종용하여 가담시키는 한편 우범선 등 조선인들을 참여시켰다.

1895822일이 거사일이었으나 탄로날 것을 우려한 미우라는 20일 새벽에 옥호루에 난입하여

명성황후와 궁녀들을 무참히 시해하였다. 증거를 없애기 위하여 미우라는 명성황후의 시신을 불태워 우물에 버렸다.

명성황후를 제거한 일본은 갑오개혁의 후속 조치로 을미개혁을 실시하였다.

을미개혁은 연호로 건양을 사용하고, 양력을 사용하였으며, 단발령과 종두법,

그리고 우편제도를 실시하는 것이 주요 내용이었다.

그리하여 1895년 음력 1116일의 다음날이 1896년 양력 11일이 되었다. <조선왕조실록> 고종실록 33권 고종 32(1895)1115(양력 18951230, 음력 18951115)에 의하면

 

조령을 내리기를,

"정삭(正朔)을 이미 고쳐 태양력(太陽曆)을 쓰도록 한 만큼 개국 505년부터 연호(年號)를 세우되 일세일원(一世一元)으로 정하여 만대토록 자손들이 조심하여 지키게 하라."

하였다.

 

이제 음력대신에 양력이 주가 되었던 것이다.

고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