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진왜란 때 바다의 명장 이순신과 더불어 싸움을 승리로 이끈 육지의 명장이다.
뛰어난 지략과 꺾이지 않는 구국의 정신으로 백성들을 이끌며 행주산성에서 빛나는 승리를 거두었다.
자는 언신, 호는 만취당 또는 모악, 시호는 충장이다.
권율은 아버지가 영의정을 지낼 정도로 이름 있고 넉넉한 집안에서 태어나 어려움을 모르고 자란 편이었다.
그는 1582년에 과거에 급제하여 임진왜란이 일어났을 때는 광주 목사로 있었다.
서울이 일본에 의해 함락된 뒤 방어사 곽영을 따라 북쪽으로 올라오다가 용인에서 일본군과 맞붙었으나 패하였다.
그 뒤 남원에 머물면서 1천여 명의 의병을 모아 금산에서 왜장 고바야카가 이끄는 일본군을 크게 이기고
전라도 관찰사로 승진하였다.
금산에서 일본군을 무찌른 권율은 계속 북쪽으로 올라오다가 오산에 있는 독산성에 자리를 잡았다.
일본군은 독산성에 물이 적어 권율이 오래 버티지 못할 것으로 보고, 성 주위를 둘러싼 채 시간을 끌며 기다렸다.
이때 권율이 새벽녘에 독산성 꼭대기로 말 수십 필을 데려가 흰 쌀을 끼얹으며 마치 물로 씻기는 것처럼 보이게 했다.
멀리서 이것을 본 일본군은 산곡대기에서 말을 씻길 정도로 물이 많다고 여겨 물러나기 시작했다.
권율은 때를 놓치지 않고 재빠르게 일본군의 뒤쪽을 공격하여 마침내 승리를 거두었다.
권율은 명나라 군대와 힘을 합쳐 서울을 되찾기 위해 고양에 있는 행주산성에 머물렀다.
드디어 새벽을 틈타 조총으로 무장한 일본군 3만 명이 몰려왔다.
그러나 조선 병사는 의병까지 합쳐도 1만여 명에 불과한데다 무기는 활과 창을 쓰는 정도였다.
여러 겹으로 성을 포위한 일본군은 쉴 새 없이 공격을 퍼부으며 나무 울타리를 불태우려 하자,
성 위에서 물을 퍼부어 불을 껐다. 급기야 화살이 다 떨어지자 권율은 잿가루를 뿌리고 돌을 던지면서까지 싸우게 했다. 이렇듯 일사불란한 권율의 지휘 아래 모두가 힘을 합쳐 마침내 일본군을 물리치고 대승리를 거두었다.
싸움이 얼마나 치열했던지, 시체를 모아 태우는 냄새가 몇 리 밖까지 풍겼고,
버려진 적의 시체에서 베어 낸 머리가 130여 두였으며, 왜장 여러 명이 부상당했다.
이른바 행주 대첩이라 불리는 이 싸움의 승리로 권율은 조선 군인을 총지휘하는 도원수가 되었다.
그 뒤 정유재란이 일어나자, 권율은 서울을 지키기 위해 울산에서 일본군과 맞섰으나
명나라가 협조하지 않아 철수해야 했다. 2년 뒤에 권율은 병을 얻어 세상을 떠났다.
행주산성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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