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고 배우는 인물사/인물여지도

안동의 파락호, 김용환선생

윤의사 2021. 5. 31. 16:17

재산이나 권력이 있는 집안의 자손이 집안의 재산을 몽땅 털어먹는 난봉꾼을 가리키는 말이

'파락호(破落戶)'라고 말한다.

안동에서 파락호의 대명사로 불려지는 사람이 바로 김용환(金龍煥, 1887∼1946년)선생이다.

김용환선생은 학봉 김성일의 13대 종손이다.

김용환선생은 안동지역의 노름판을 쥐고 흔든 사람이었다.

저녁 무렵에 시작한 노름이 새벽에야 끝나는데, 막판에는 판돈을 모두 걸고 했다.

하지만 자신이 지면

"새벽 몽둥이야!"

라고 김용환선생이 소리치면서 수하의 사람들이 판돈을 덮쳐 자루에 담아 유유히 사라지곤 하였다.

이렇게 노름으로 김용환선생이 종가 재산으로 전해진 논밭 18만평(오늘날 가치 400억원)을 날려버렸다.

 

하지만 파락호 노름꾼 김용환선생이 만주에 독립군 자금을 댄 독립투사임이 死後에 밝혀졌다.

그가 탕진했다는 집안 재산은 모두 만주 길림성의 서로군정서 등 독립군의 독립자금으로 쓰인 것이다.

일본의 눈을 피하기 위해 김용환선생은 노름꾼, 술과 여자, 파락호라는 불명예를 감수한 것이다.

이러한 사실은 선생이 임종 직전에도 내색하지 않았다. 주변 사람들이 파락호라고 수근대도...

독립군 동지가 임종 직전

"이제는 만주에 돈 보낸 사실을 말해도 되지 않겠습니까?"

라고 하자, 선생은

"대한민국 국민으로 당연히 해야할 일인데 말할 필요가 없습니다."

라면서 눈을 감으셨다고 한다.

선생이 독립자금을 마련하는 동안 집안은 말이 아니었다.

무남독녀 외동딸이 마평 서씨 가문에 시집을 가는데,

시댁에서 받은 장롱을 살돈까지 노름으로 탕진했다고 한다.

결국 딸은 어머니가 사용하던 장롱을 시댁에 가지고 가니,

시댁에서는 "나쁜 귀신이 붙어왔다"며 불태워졌다.

독립에 공헌한 공로로 1995년 건국훈장을 받으니 외동딸 김후옹여사는

아버지가 훈장을 받던 날 '우리 아배, 참봉 나으리'라는 글을 썼다.

 

 

 

 

“마평 서씨문에 혼인은 하였으나 신행날 받았어도 갈 수 없는 딱한 사정.

신행 때 농 사오라 시댁에서 맡긴 돈, 그 돈마저 가져가서 어디에다 쓰셨는지?

우리 아배 기다리며 신행날 늦추다가 큰어매 쓰던 헌농 신행발에 싣고 가니 주위에서 쑥덕쑥덕.

그로부터 시집살이 주눅 들어 안절부절, 끝내는 귀신 붙어왔다 하여 강변 모래밭에 꺼내다가 부수어 불태우니

오동나무 삼층장이 불길은 왜 그리도 높던지, 새색시 오만간장 그 광경 어떠할고.

이 모든 것 우리 아배 원망하며 별난 시집 사느라고 오만간장 녹였더니...”

 

나라를 위해서는 자신의 희생을 남에게 밝히지도 않은 선비 정신이 오늘날에 그리운 것은 무엇 때문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