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고 배우는 인물사/인물여지도

의령출신 독립지사 안희제선생

윤의사 2021. 4. 2. 16:37

안희제선생은 1885년 음력 8월 4일에 경남 의령군 부림면 입산리에서 태어났다.

선생인 어려서 한학을 공부했는데 글쓰기에 뛰어났다.

뛰어난 글쓰기는 17세 때 의령관아에서 열린 백일장에서 어린 나이임에도 가장 먼저 시를 써서 제출하였다.

이를 본 의령군수가 칭찬을 하고 후한 상을 주었다.

이때 쓴 시는 다음과 같다.

 

조욕유한심벽곡(鳥欲有閑尋僻谷)

일렴편조도중천(日慊偏照到中天)

 

새는 한가로움을 좋아하여 골짜기만 찾아드는데

해는 편벽되기를 싫어하여 중천에서 광채를 더한다.

 

러일전쟁과 을사조약 이후 신학문을 배우기 위해 상경하여 양정의숙을 졸업하였다.

1916년 의령에 있는 논밭 2천마지기(1마지기는 2백평)를 팔아

부산 중앙동에 포목과 건어물을 파는 백산상회를 세웠다.

1918년에 주식회사로 전환하여 각지의 독립운동 자금을 모아 상하이에 있는 대한민국 임시정부에 전하였다.

해방 이후 선생을 통해 김구선생에게 독립운동자금을 보낸 최준이 자신이 보낸 금액을 김구에게 보여주자,

김구도 안희제 선생에게 받은 독립운동자금을 내보였다.

두 사람의 금액은 동일하였다.

이에 최준은 눈물을 흘리며 이미 일본의 고문에 의해 세상을 떠난 선생께 용서를 빌었다고 한다.

왜냐하면 최준 자신은 안희제선생이 자신이 준 금액 중 일부는 횡령했을 것이라고 생각한 모양이었다.

선생은 중외일보라는 신문사를 만들어 언론을 통한 항일운동을 전개하였다.

1933년 선생은 중국에 발해농장을 세웠다.

농장에서 한민족을 고용하여 농사를 기으면서 그들의 자녀들에게 민족교육을 실시하고

농촌계몽운동에 나섰다.

대종교의 지도자로 활동하던 선생은 1942년 독립운동가들이 많이 활동하던 대종교를 탄압하기 위해

일으킨 임오교변으로 일경에 체포되어 1943년 8월 3일에 중국에서 순국하셨다.

정부에서는 1962년 건국훈장 독립장을 추서하였다.

 

의령에 있는 안희제선생 생가

의령의 안희제선생 생가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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